HOME > DOMESTIC TRAVEL
DOMESTIC - DOMESTIC TRAVEL
말 없는 말, 법 없는 법, 곡성 태안사

 

 

 

태안사

숲으로 둘러싸인 태안사 마당에 서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태안사

가을볕이 길게 들어온 태안사 대웅전.

 

배알문

배알문에선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토란탕

달고 찰기 있는 토란탕으로 배를 채웠다. 

 

말 없는 말, 법 없는 법
태안사로 들어가는 매표소부턴 비포장도로가 펼쳐졌다. 차를 타고도 절의 일 주문까지 갈 수 있는데 많은 이들이 매표소 앞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 올라간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길인데, 이 길이 아름다워 태안사를 찾는 사람들도 있어요.” 동리산에서 쏟아지는 맑은 계곡물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따라 건너면 기와지붕을 얹은 다리가 나온다. 조선 영조 시대에 만들어진 능파각으로 지붕을 올려 만든 형태가 독특하다. 능파각 뒤에는 일주문이 있다. “이 절은 신라 때 세워져 조선 숙종 28년까진 대안사라고 불렸어요. 산중에 절이 위치해 머물기 평안하다고 해서 ‘편안할 태泰’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한국전쟁 때 일주문과 능파각을 제외하곤 모두 불에 타 유실되었고 현재 절은 중건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름의 뜻처럼 평온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태안사가 또 하나 유명한 건 보물 제273호로 지정된 적인선사탑이 남아 있는 덕분이다. 부처가 있는 대웅전보다 높이 위치한 부도는 태안사를 유명하게 만든 혜철스님의 부도다.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걸쳐 활동한 혜철스님은 당나라에서 유학한 뒤 태안사에 머물며 선종을 알렸다. 조선 후기 명필로 알려진 창암 이삼만이 쓴 현판이 걸린 배알문拜謁門을 넘어서야 부도탑이 나오는데, 배알문은 사람 키보다 낮게 만들어져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게 된다. 팔각 원당형으로 만든 그의 부도 앞에서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를 존경하는 후대의 사람이 만든 부도는 특히 처마 모양이 정교하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한 번 복원을 해 형태가 다소 틀어졌지만 여전히 위용이 느껴졌다.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말 없는 말, 법 없는 법)에 대한 깨달음을 전파했어요.” 무설설무법법은 법을 설한 자도 없고 들은 자도 없다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곱씹으니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어느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고, 정해진 바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부도에 합장을 하고 다시 한번 배알문을 나서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따가웠던 가을볕이 한풀 꺾여 해질 녘의 부드러운 주홍빛 이 태안사에 내려앉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곡성역으로 향했다. 역 주변에 자리한 식당에서 제철을 맞은 토란으로 끓인 토란탕을 먹었다. 감자보다 찰기 있고 단맛을 내는 토란에 들깻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끓인 탕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웠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은 읍내엔 곡성역만이 불빛을 내고 있다. 플랫폼에 서서 어두워진 하늘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낮은 능선을 한참 바라보았다.

 

 

 

<2018년 11월호>

 

에디터 권아름

포토그래퍼 백지현

취재 협조 곡성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