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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북미
밴쿠버 근교 눈꽃 여행
스쿼미시
스쿼미시

이상하리만치 화창한 아침이었다. 밴쿠버에 도착한 뒤 처음 맞는 ‘비가 오지 않는’ 아침. 겨울만 되면 비가 잦아 ‘레인쿠버’라고 불린다는 이 도시에서 마지막 날이나마 파란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꽤 고마운 일이다. 언제부턴가 출장마다 구름을 몰고 다니는 불운의 아이콘이 된 이후, 나는 이토록 긍정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밴쿠버에서 차로 1시간가량이면 닿는 근교 스쿼미시Squamish. 캐나다 스키어들의 성지인 휘슬러와 밴쿠버의 중간 지점쯤에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소도시다. 여름이면 래프팅과 산악자전거, 겨울이면 거대한 설산을 오르내리는 시 투 스카이 곤돌라Sea to Sky Gondola 덕분에 전 세계 모험가들이 몰려드는 아웃도어 스포츠의 메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그 곤돌라를 타러 떠난다.


여느 때처럼 투어의 시작점은 캐나다 플레이스였다. 오전 9시 30분. 비교적 여유 있게 도착한 터라 관광 안내소 앞에서 괜히 온갖 액티비티며 투어 팸플릿을 만지작거렸는데, 어느새 컨벤션 센터 앞에 스쿼미시 커넥터 버스가 멈춰 서 있었다. 버스란 이름을 달기엔 다소 작은 크기였지만, 예약한 손님만 실어 나르다 보니 인원에 맞게 배차하는 듯 보였다. 버스는 빠른 속도로 도심부를 빠져나가 북쪽으로 향했고, 곧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시 투 스카이 하이웨이를 내달렸다. 창문 밖 풍경이 조금씩 넓고 깊고 거칠어지는 사이, 승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도 점점 더 숨가빠졌다. 캐나다 플레이스를 떠난 지 1시간 만에 시 투 스카이 곤돌라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땐 사방이 온통 눈밭이었다. 비교적 온난한 밴쿠버에선 멀찍이 바다 너머 풍광으로만 감탄했던 이미지. 체감 기온도 한참 내려간 뒤라, 완전 무장한 채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과연, 밴쿠버의 기온이 아무리 영상을 웃돌아도 캐나다의 겨울은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전망대가 위치한 서밋 로지Summit Lodge로 올라가면 돼요. 다시 다운타운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3시에 출발하니 참고하시고요.” 앞으로 4시간이라니, 출발 전만 해도 나름 긴 일정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눈앞에서 대자연의 위용을 마주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정말 4시간으로 충분할까? 설산을 헤집으며 스노슈잉도 하고, 로지 레스토랑에서 점심도 먹어야 하는데? 패딩 지퍼를 턱 끝까지 올린 뒤, 나는 서둘러 곤돌라에 올랐다.

 

 

스쿼미시
스쿼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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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에서의 시간은 완벽히 풍경과 일체화되어 있었다. 이름처럼 ‘바다에서 하늘로’ 향하는 그 10분 동안, 유리창 너머로 일대의 기암절벽이며 설산, 하우 해협이 한데 뒤엉켜 절경을 이뤘다. 하늘과 바다는 파랬고, 땅은 온통 새하얬다. 해발 885미터에 위치한 서밋 로지 전망대에 다다르자 스쿼미시 일대의 크고 작은 산들이 돌연 발아래로 쏟아졌다. 눈꽃이 소복이 내려앉은 소나무 군락이 햇살 아래 찬연히 빛났다. 장엄하고 압도적인,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풍광이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와 옆 봉우리를 잇는 흔들다리. 스카이 파일럿 서스펜션 브리지Sky Pilot Suspension Bridge란 이름의 이 다리는 약 100미터 길이로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리지보다 조금 짧지만, 훨씬 아찔하고 스릴 넘쳤다. 이런 데서 번지점프를 하면 끝내주겠구나, 한 발짝 한 발짝마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다리 위에 서서 한참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다리 건너편에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가 숨어 있었고, 나무 사이로 깊숙이 들어설 때마다 연인들의 발랄한 애정 행각이 캐나다산 로맨스 영화처럼 펼쳐졌다.

 

 

스쿼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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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트레일의 눈 상태가 아주 좋아요. 어제까지 쌓여 한 번도 녹거나 얼지 않은 눈이거든요.” 낮 12시 30분, 스노슈 투어를 위해 서밋 광장에 모인 여행객들에게 투어 가이드가 맨 처음 꺼낸 말이다. 가이드는 이내 빠르고 능란한 손놀림으로 여행객들의 스노슈즈 상태를 체크했다. 호주에서 온 노부부와 미국 아가씨 셋이 오늘 스노슈 투어의 일행이었다. 서밋 로지를 중심으로 뻗은 5개의 스노슈잉 코스 중 우리가 체험할 곳은 파노라마 트레일. 총 1.6킬로미터 길이의 초급 난도 코스로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일행의 수준에 맞게 조금씩 코스를 더하거나 뺄 예정이란다. “사실 소요 시간은 매번 달라요. 파노라마 트레일의 경우 빠르면 1시간 안에도 돌아올 수 있지만, 어떤 그룹은 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죠. 모두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꼭 알려주세요.” 놀랍게도 온통 스노슈잉 초보자만 모인 우리의 여정은 1시간 30분 만에 파노라마 트레일 전체와 중간중간의 샛길까지 정복하며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덱 전망대를 비롯해 곳곳에 자리한 ‘셀카 포인트’마저 완벽히 섭렵한 뒤였다. 가이드의 말대로 눈 상태가 워낙 좋아서였을까, 언덕길 끄트머리마다 나타나는 절경도 매번 기가 막혔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그것도 거의 스키장급으로 보송보송한 파우더 스노에!) 첫 발자국을 남길 때의 설렘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스노슈 투어를 끝내고 나니 오후 2시. 갑작스레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와 급히 서밋 로지로 돌아왔다. 따뜻한 벽난로 앞 테이블에서 손발을 녹이며 이곳 명물이라는 초콜릿 퐁뒤를 맛봤다. 과일이며 마시멜로, 도넛 등에 뜨거운 초콜릿을 듬뿍 찍어 한입에 넣자 달콤한 온기가 순식간에 온몸에 퍼졌다. 통유리창 너머 풍경은 변함없이 비장했고, 로지 안쪽까지 스민 고산지대의 햇살이 눈앞에서 투명하게 반짝였다. 밴쿠버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가장 눈부신 날, 내가 스쿼미시에 있다는 사실이 더할 수 없는 행운처럼 느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세상 어떤 작별 인사보다 다정했다.

 

 

<2019년 2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강신환
취재 협조
캐나다관광청 kr-keepexploring.canada.travel
밴쿠버관광청 www.tourismvancouver.com
비아레일 캐나다 www.viarail.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