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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아시아
타이 북부의 뜨는 도시 4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엔 서두를 일이 없다.

광활한 차밭을 누비고 느릿느릿 호숫가를 유영하며 미식을 만끽하는 걸로 충분하다.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타이 북부의 네 도시를 권하는 이유다.

 

타이 북부의 뜨는 도시
사원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승려들

사원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승려들. 타이의 흔한 오후 풍경이다.

 

정통 타이 마사지에 쓰이는 재료들

정통 타이 마사지에 쓰이는 재료들. 색깔도 곱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사이에 낀 한가로운 소도시 람빵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사이에 낀 한가로운 소도시 람빵.

싱그러운 녹음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마을에는 예상치 못한 낭만과 섬세한 예술가적 기질이 숨어 있었다.

 

치앙라이의 유기농 차 농장 사왕본딘 팜 & 홈스테이의 젊은 주인

치앙라이의 유기농 차 농장 사왕본딘 팜 & 홈스테이의 젊은 주인.

 

수코타이의 밤거리 풍경

수코타이의 밤거리 풍경.

 

지금껏 타이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대개 중부와 남부의 것이었다. 산호초가 넘실대는 투명한 청록빛 바다와 야자나무가 길게 늘어선 백색 해안가, 불빛 따라 흥청거리는 동남아 번화가의 뜨거운 밤. 때로는 바다에 뛰어들어 열대어 떼의 군무를 감상했고, 때로는 화려한 밤거리를 목적 없이 배회했다. 몇 해 전부턴가 치앙마이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급부상하며 열풍처럼 불어닥친 ‘한 달 살기’ 여행을 이끌었을 때도 그저 치앙마이가 궁금했을 뿐, 북부 지역 전체에 큰 관심이 생겼던 건 아니다. 오히려 북부로의 여정을 결심하게 된 건, 얼마 전 타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인에게서 몇 장의 사진을 건네받은 이후부터다. 그 핫하다는 치앙마이도 아니고, 그나마 아는 지명인 치앙라이Chiang Rai도 아닌 그곳은 두 지역 사이에 낀 한가로운 소도시 람빵Lampang. 싱그러운 녹음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마을에는 예상치 못한 낭만과 섬세한 예술가적 기질이 숨어 있었다. “북쪽으로 가봐. 네가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테니까. 앞으론 타이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지 못할걸?” 틈만 나면 짐을 꾸려 홀연히 세계 곳곳을 떠돌던 지인은 지난여름, 내게 타이 북부라는 여행지를 처음으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가을. 혹독한 무더위 끝에 느닷없는 찬바람이 밀려왔을 때, 나는 여름만큼이나 혹독해질 겨울을 목전에 두고 다시 한번 타이 북부를 떠올렸다. 여행객보다는 현지인, 명소보다는 예술과 자연, 무엇보다 지친 심신을 달래줄 다정한 여행지가 절실한 순간이었다. 람빵을 중심으로 타이 지도를 새로 훑었다. 우선 인접한 소도시인 수코타이Sukhothai와 파야오Phayao, 여기에 이미 여행객으로 들끓는 치앙마이 대신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치앙라이를 추가했다. 아직 외지인의 발길이 덜 닿은 청아하고 목가적인 고산지대에 점점 더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치앙라이 나이트 바자에서 맛본 타이식 샤부샤부

치앙라이 나이트 바자에서 맛본 타이식 샤부샤부. 새우와 오징어, 돼지고기, 닭고기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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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빵의 대표 공방 다나바디에선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를 구워낸다.

 

타이 북부 대부분의 도시를 지배하는 건 여전히 짙게 깔린 고대 왕국의 감수성이었다. 크게 2개의 왕국이 대표적인데, 13세기에 건국된 란나Lanna와 수코타이 왕국이 그 주인공. 다만 200년 만에 막을 내린 수코타이 왕국의 흔적이 중북부의 작은 도시 하나에 집중돼 있는 것과 달리, 무려 5세기에 걸쳐 이어진 란나 왕국의 영향력은 비교적 여러 도시에 폭넓게 퍼져 있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람빵 등 주요 도시의 명소 대부분이 란나 왕국 시대의 산물이고, 지금도 현지인들은 북부 지역을 가리켜 흔히 란나라 칭한다. 일주일간 여러 도시를 돌며 가장 많이 들은 단어 역시 란나다. “1292년 망라이 왕에 의해 건국된 란나 왕국은 타이 최북단의 치앙라이를 첫 번째 수도로 택했어요. 치앙라이의 ‘라이Rai’는 망라이 왕의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이후 왕국의 성장과 함께 문화 예술적으로 큰 번영을 누렸지만, 5년 만에 치앙마이에 수도 자리를 뺏기며 그저 국경으로 가는 관문도시로 남겨졌죠. 그사이 치앙마이는 타이 제2의 도시, 북방의 장미 같은 타이틀을 얻으며 화려하게 부상했고요.” 타이에서 만난 현지인 가이드는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의 뒤바뀐 운명에 대해 제법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해줬다. 요즘 치앙마이에 얼마나 여행객이 많은지, 예쁜 카페와 세련된 식당, 젊은 예술가들의 공방은 또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도. 그냥 치앙마이나 갈걸 괜히 치앙라이를 골랐나 보네, 여행 초반만 해도 적잖이 흔들리던 마음은 여정이 계속되자 조금씩 사그라졌다. 어느 동네를 가든 한껏 물이 오른 수목과 어지간해서는 인파로 고생할 일 없는 명소들,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는 현지인의 삶이 켜켜이 포개졌다.

 

늦은 밤, 치앙라이 일요 마켓 스트리트 근처
늦은 밤, 치앙라이 일요 마켓 스트리트 근처

늦은 밤, 치앙라이 일요 마켓 스트리트 근처.

 

타이 코끼리 보호 센터에 견학 온 어린이들

타이 코끼리 보호 센터에 견학 온 어린이들.

 

이 지역이 최근 들어 여행자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파야오의 고즈넉한 호숫가에 앉아 물고기 대신 세월을 낚았다. 람빵의 빈티지한 골목을 거닐며 젊은 예술가들의 감성을 엿봤고, 수코타이의 700년 된 폐허를 따라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 무엇보다 나는 치앙라이의 작은 농가에서 오랜 꿈이 현실화된 실체와 마주했다. 방콕에서의 포토그래퍼 활동을 접고 치앙라이로 건너와 아담한 차밭을 가꾸며 카페와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청년은 이 새로운 인생이 너무나도 즐겁다고 말했다. 바람과 햇살을 받아 성장하는 푸른 찻잎 같은 인생. 그의 삶을 안온하게 가꾼 자연이 여행자의 시선에도 그대로 포개졌다. 생각해보면 이번 여정에서 만난 모든 도시가 그랬다. 여행자를 지치게 하는 그 어떤 요소도 쉬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른 아침 승려들의 탁발 행렬을 구경하고 강변 옆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긴 뒤 깊은 산속 뜨끈한 알칼리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나면, 도시에서부터 따라온 온갖 근심거리가 한순간에 씻겨 내려갔다. 타이 북부에서 보낸 일주일은 다감하고 온화한 치유의 시간이었다. 지루할 틈 없는 쇼핑 거리, 실패를 모르는 미식이 이 여정에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2018년 11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태국정부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