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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 FOOD & DRINK
고기를 먹지 않는 삶
고기를 먹지 않는 삶

나는 자타공인 육식주의자였다. 솔 푸드는 삼겹살이고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푹 끓인 뼈다귀해장국을 가장 먼저 찾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스스로 육식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틀림없는 편견이었다. 체험을 위해 선택한 채식은 가금류를 포함한 육고기만 먹지 않는 페스코 단계였다. 평소처럼 친구를 만나 술도 마셨고, 감자튀김과 떡볶이도 먹었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이 페스코 채식에 적합한 것임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채식에 딱딱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다만 우리는 지나치게 ‘육식하는 삶’에 노출돼 있었다. TV를 틀면 고기를 먹는 프로그램과 치킨을 튀기는 광고가 넘쳤고, 간편 식품은 대부분 육고기 가공품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육식에 대한 욕구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10일간의 체험은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고기를 먹고 싶은 순간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몇 번이고 되물었다. 질문 끝에 얻은 대답은 분명 고기 없이도 ‘살 만하다’였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50만 명에 육박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10분의 1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놀랄 만하다. 그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육식하는 삶을 떠나왔으리라.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서 또 누군가는 동물권을 위해서. 어떤 이유든 의미 있는 까닭은 오롯한 자기결정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권하는 자극적이고 편리한 삶을 거스르는 선택. “채식의 장점을 체감하면 여러 환경 문제를 받아들이는 데에 한결 유연해집니다.” 해방촌의 사찰음식점, 소식의 안백린 셰프의 말이다. 실제로 육식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니, 그 모순은 쉽게 눈에 띄었다. 품종 개량으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겪는 닭, 강제 임신을 당하는 소와 돼지. 최소한의 생명권마저 거세된 고기는 결국 돌고 돌아 인간의 식탁에 오른다. 윤리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생명, 환경, 탈육식에 대한 나의 무지를 애써 외면해왔음을 고백한다. 단순한 기회로 접한 채식이 미래의, 또 지금의 나에게 무거운 과제를 남겨준 기분이다.

 

 

 에디터 m의 비거니즘 라이프  

 

4월 29일 첫날
‘오늘부터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심적인 부담감이 몰려왔다. 고기를 아주 좋아하지만 매 끼니 고기반찬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겹살이며 치킨 생각이 간절했다. 점심은 회사 근처의 생선구잇집으로 정했다. 문제는 저녁 식사였는데,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때를 놓쳐 건너뛰고 말았다. 자취집 냉장고를 열었더니 통조림 햄과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가공식품만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삶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채식을 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삶

4월 30일 고기 없이 술 마시기
저녁 때 친구와 술 약속이 잡혀 있었다. 자주 가던 일식 술집에서 뜨끈한 짬뽕을 먹고 싶었지만 고기 육수일 것이 틀림없었다. 검색 끝에 찾은 비건 술집으로 향했다. 이름은 ‘드렁큰비건’. ‘채식’ 하면 떠오르는 건강한 이미지와 음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서로 상충되는 것도 아니다. 채식을 건강의 이유만으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니까. 실제로 이곳 사장은 ‘채식해도 술은 즐길 수 있잖아?’ 하는 생각에서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먼저 ‘비건 라자냐’가 서빙되어 나왔다. 파스타 면 대신 건두부를 사용하고, 콩단백을 넣은 토마토소스와 직접 만든 비건치즈를 쌓아 올렸다. 두 번째 메뉴는 ‘후라이드 컬리플라워’. 튀김옷에 시리얼을 넣어 고소한 맛과 식감까지 더했다. 술을 시켜둔 것을 까먹을 정도로 훌륭한 맛에 요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한 한을 풀었다. ‘이 정도라면 채식도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식사였다.

 

5월 3일 장보기와 떡볶이
각종 부위의 돼지고기와 소고기, 통조림 햄까지. 이 정도면 반채식주의 냉장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집 근처 대형마트로 향했다. 맵고 짠 음식이 당겼다. 그래서 타협한 메뉴가 ‘고기를 넣지 않은 떡볶이’였다. 각종 채소와 떡, 어묵, 그 외에 필요한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코너마다 자리 잡고 고기만두며 치킨너겟을 튀기던 시식 카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통에 서둘러 계산하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평소와 똑같은 레시피로 떡볶이를 만들었다. 소시지와 햄만 제외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완성한 떡볶이는 전에 먹던 것과 별다를 것이 없는 맛이었다! 필수라 생각했던 소시지와 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재료였던 거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채식 메뉴가 아닐 거라는 편견, 그리고 일상에서 먹던 음식이 알고 보면 채식에 적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삶

콩갈비를 활용한 요리, 속세의 사찰.

 

고기를 먹지 않는 삶

5월 5일 나는 무엇을 먹는가
채식을 시작하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단순한 끼니 걱정이 아니라 식재료 출처부터 시작해 음식이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공부한다는 의미다. 이런 정신을 지향하는 음식점을 찾았다. 해방촌에 위치한 사찰음식점, 소식이다. 소식의 메뉴는 사찰음식의 재해석에 가깝다. 불교에서 금하는 재료인 마늘이나 파, 술도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재료의 기원을 알고 자연을 존중한다는 불교의 철학은 그대로 계승한다. 안백린 셰프는 지역의 여러 소농인이 재배한 재료를 사용해 요리한다. 직접 산이며 들로 나가 야생초를 뜯어오기도 한다. 육고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으니 채식과도 맞닿아 있다. 첫 접시 ‘아무스 부시’는 숯불에 태운 가지에 숯가루와 흑마늘 치즈, 한련화 잎을 올린 애피타이저다. ‘몰랐던 미각의 영역을 일깨우는 맛’이라고 평하고 싶다. 두 번째는 콩고기를 갈비 양념에 구워낸 요리다. 이름은 ‘속세의 사찰’. 맛과 식감, 육안으로 보이는 질감까지 돼지고기와 다를 바 없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셰프가 술 한 잔을 내어준다. 다섯 번으로 나누어 빚는 조선시대 양조 기법을 따른 약주, 천비향이다. 불 향이 은은한 콩갈비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100퍼센트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쑥, ‘초콜렛 테린느’의 ‘달콤한 귀농’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실제로 소식의 손님들 가운데 채식주의자는 많지 않지만, 음식을 탐구하며 먹는 것 자체로 신선한 경험이 될 거다.

 

5월 8일 육식 해방 기념일
고기를 당장, 영영 끊기는 어렵겠으나 줄일 수는 있다. 지난 10일간의 체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드렁큰비건의 은하선 대표는 “엄격한 비건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만난 비건 지향인들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문제를 떠나 삶의 전반적인 범위에서 물음을 확장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채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체에서 정신으로, 사회에서 환경으로, 실제 짧은 시간 동안 내 관심은 괄목할 만큼 널리 뻗어갔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부로 육식에서 해방되었음을 선언한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재료 

템페

1 파아프 템페 | 템페
인도네시아의 대표 음식으로, 본래는 발효음식을 통칭하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콩을 발효시킨 것을 일컫는다. 최근에는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 고단백 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대로 프라이팬에 굽거나 샐러드, 샌드위치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코코넛 비거트, 드링킹 코코넛

2 비거트 | 코코넛 비거트, 드링킹 코코넛
비거트는 비건과 요거트의 합성어다. 우유를 사용하지 않고 식물성 원료만으로 만든 요거트로, GMO 식재료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글루텐, 설탕, 트랜스지방도 제로다. 코코넛 밀크와 유산균, 네덜란드산 감자 전분만 사용하는 완전 비건 식품이다.

 

담백한 소이마요

3 오뚜기 | 담백한 소이마요
출시되자마자 채식주의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제품.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마요네즈로, 오뚜기 마요네즈 중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는 처음이다. 콩을 사용했기 때문에 논비건인의 건강 식재료로도 훌륭하다.

 

더 비욘드 버거

4 비욘드 미트 | 더 비욘드 버거
미국의 스타트업, 비욘드 미트에서 생산하는 식물성 고기. 정확한 용도는 햄버거 패티다. 빌 게이츠와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투자해 최근 경제면 기사로 더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각종 양념을 더해 조리하면 대체 육류로 흠잡을 곳 없다.

 

<2019년 6월호>


에디터 권아름, 송혜민
포토그래퍼 전재호, 강신환, 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