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OMESTIC TRAVEL
DOMESTIC - DOMESTIC TRAVEL
갈 곳 잃은 사람들의 집, 수덕사

봄꽃 따라 예산 옛 마을 산책②

 

예산 수덕사

고려 시대 목조 건축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수덕사의 대웅전 옆면.

 

예산 수덕사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인 만큼 이곳에는 고목이 많다.

 

예산 수덕사

지금도 새로운 건물과 탑이 만들어지는 수덕사.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예산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수덕사다. 예산10경 중 제1경에 해당하는 사찰로 백제 시대에 창건되어 지금까지 고승을 많이 배출한 공을 인정받아 1984년부터 덕수총림으로 지정되었다. 덕수총림이란 일종의 불교 교육기관 역할을 하는 곳으로 그만큼 대한불교조계종에선 큰 역할을 하는 사찰이다. 덕숭산 기슭에 있는 수덕사 입구 쪽에는 산채비빔밥을 파는 식당이 줄을 지었다. “본래는 대웅전 근처에도 식당과 주막 등이 있었어요. 1980년대 후반에 수덕사를 정리하며 가게들은 모두 문 밖으로 밀려났죠.” 수덕사 문화해설사를 입구에서 만나 함께 대웅전 방향으로 향했다. 같은 예산 지역이지만 수덕사는 숲에 자리해 평지보다 기온이 낮아 아직도 꽃망울만 맺힌 나무들이 있었다. 걷는 길에 소담한 초가집 한 채가 보였다. 국내 현대미술의 문을 연 고암 이응노의 부인 박귀희가 꾸리던 수덕여관이다. 고암은 과거 문인이자 화가인 나혜석이 이곳에 머문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그림을 배우고자 수덕여관을 찾았는데, 그때 이곳에 반해 아예 인수를 했다. 이후 1968년 동백림 사건으로 고된 옥살이를 하고 국외로 추방당하기 전 다시 이곳을 찾아 잠시 머물렀다. “여전히 박귀희 여사가 수덕여관을 운영 중이었는데 그때 두 사람은 이혼한 상태였어요. 이미 이응노는 프랑스에서 재혼했고요.”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시기였을 이응노를 보살폈던 건 박귀희였다. 간판과 여관 앞 바위 그림은 이응노가 수덕여관을 떠나기 전 남긴 작품이다. 고국에서 추방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은 동양화를 서양의 추상화처럼 표현했는데, 감각적인 그의 작품 세계가 잘 담겼다. 수덕여관 옆에는 그의 작품을 기리고 지금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선미술관이 있다.


“이응노 화백 외에도 수덕여관에는 근대 신여성이자 친구였던 나혜석과 김일엽의 이야기가 얽혀 있죠. 김일엽은 수덕사에서 수양해 스님이 되었고, 나혜석은 스님이 되고 싶었으나 당시 수덕사에 있던 만공 스님에게 거절당했어요.” 남녀차별이 심하던 시대에 여성 해방 운동을 주도했던 두 사람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김일엽이 먼저 스님이 되었고 이후 모든 것을 잃은 나혜석이 찾아왔다. 두 예술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는 동안 내내 가난과 비난,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예술가들이 수덕여관에서 마음을 달랜 것이다. 지금은 텅 비었으나 과거엔 막걸리와 안줏거리도 팔았다는 수덕여관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마음을 달랬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수덕여관이 정겹게 느껴졌다.  

 

 

예산 수덕사

수덕사 앞에는 식당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수덕여관

나혜석과 김일엽, 이응노가 머물렀던 수덕여관.

 

예산 수덕사

수덕사 대웅전 앞에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등이 가득하다.

 

예산 수덕사

추사고택에 봄이 왔다. 분홍빛 매화가 만개했다.

 

수덕사 일주문 옆에는 여승을 위한 절인 환희대가 있다. 김일엽이 마지막 생을 살았던 곳인데, 수양은 수덕사의 또 다른 비구니 절인 견성암에서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사찰로 지금도 100여 명의 여승이 수양하고 있다. 수덕사 내에만 2개의 비구니 절이 있는 셈이다. 관광객과 신도들로 평일 아침부터 북적이는 사찰 안에서도 환희대는 적막했다. 일주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서자 색색의 등이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등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걷다 보니 대웅전이 나왔다. 큰 사찰이라 해서 웅장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소박한 모습에 놀랐다. 수덕사는 백제 때 설립되었으나 현재 남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은 것이다. 국내에서 지은 시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려 시대 목조 건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깊다. “앞보다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이 더 잘 보여요.” 문화해설사를 따라 옆으로 서보니 지붕을 받치기 위해 짜 넣은 주심포 양식의 기둥이 만들어낸 비례가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하다. 이 오래된 건축물 앞에는 몇 해 전 백제 와당이 발굴되었던 자리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석탑이 서 있었다. 오래된 사찰의 모습을 바꾸는 일이라 처음엔 반대에 부딪혔으나, 이것 역시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건립을 진행했다. 유서 깊은 곳은 무조건 본래 모습을 보존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백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새 공간이 만들어지며 큰 사찰로 성장한 수덕사의 역사를 떠올리니 형태보단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몸이 살아서 남이 되고, 혼까지 남음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다 버려야 다 얻어지는 것이 원칙인 때문입니다.” - <청춘을 불사르고>, 김일엽

 

김일엽이 쓴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나도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입산을 했던 김일엽은 본 모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말했다. 그 사실을 알아야만 비로소 본질에 가까워진다는데, 그 뜻은 이해하나 세인인 나로선 수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2019년 5월호>


에디터 권아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예산군청 www.yesan.go.kr/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