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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 만난 우리의 역사

역사를 따라가는 길, 천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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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천안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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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생가 앞 돌담. 한복 입은 캐릭터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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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사적지에 우뚝 선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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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유관순 열사 순국일에는 사적지에서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본뜬 동상.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서 볼 수 있다.

 

1919년 3월 1일의 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학교들에 휴교령을 내렸다. 당시 이화학당의 학생이자 31운동의 주역인 유관순은 부모님이 계시는 천안 병천으로 내려왔다. 병천에 온 뒤 근교 마을을 순회하며 사람들을 만났고, 다시 한번 만세운동을 펼치자는 약속을 얻어낸다. 거사 하루 전날 매봉산 정수리 위로 횃불이 올라간다. 밀약한 거사를 위한 신호의 불빛이었다. 같은 시각에 뜻을 함께 모은 이들이 총 24개소에서 불을 피웠다. 이튿날, 그러니까 31운동으로부터 딱 한 달이 지난 4월 1일, 유관순은 동지들과 함께 장날을 이용해 아우내장터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불렀다. 장터에 모인 인원은 무려 3000명. 이 만세운동으로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숨을 거뒀고, 3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후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고 그해 9월 옥에서 순국한다.


그의 고향인 천안은 유관순 열사를 기리기 위해 사적지를 세웠다. ‘유관순길’이라 이름 붙은 길 위에서, 지금 그날의 역사를 만난다. 열사의 거리를 지나 유관순 열사 동상, 추모각 초혼묘까지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발걸음은 유관순 열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착공한 유관순열사기념관에서 오래 머문다. 유관순 열사의 수형자 기록표, 제적등본, 재판 기록문 등 독립만세운동 관련 사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한편, 나무 벽관에 들어가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렇게 3일이면 온몸이 마비된다고 하는데, 몸집이 그다지 크지 않은 나조차도 새까만 어둠과 숨을 죄어오는 공기 때문에 3분을 버티기 힘들었다. 이런 모진 고문을 매일같이 버텨오다 결국 숨을 거둔 이들의 혼백이 오늘날 순국자 추모각에 머문다. 매년 유관순 열사 순국일에는 유관순 열사 추모제가, 2월 말일에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는 아우내봉화제가 이곳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거행된다.
인적 드문 고요한 사적지에서 머문 시간은 여운이 길다. 겨울바람이 정신을 바짝 들게 한다. 언덕 위 추모각에서 한참을 서 있으니 뼛속까지 시린 기분이다. 나라 잃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파고든 바람은 더 세차고 날카로웠을 것이다. 내 나라라 부를 곳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한 오늘이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먹먹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보다 침묵. 이 땅을 지켜준 모든 이에게 예우를 갖추는 시간이다.

 

 

병천순대

채소, 소창, 선지로 만든 병천순대는 천안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겨레의 탑

새의 날개와 기도하는 두 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겨레의 탑.

 

독립기념관 야외

독립기념관 야외에는 시비, 어록비도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주옥같다.

 

유관순 열사가 살던 생가와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까지 둘러보니 어느새 점심 때다. 천안에서의 첫 끼니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병천순대다. 병천이 순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약 50년 전부터다. “1960년대 병천 인근에 햄 공장이 들어서며 당면 대신 채소와 선지가 많이 들어간 순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요. 장날이면 뚝배기에 순대를 넣은 국밥을 말아 먹던 게 지금의 순댓국밥이 됐고요. 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국밥을 팔던 음식점이 장터 주변으로 들어서며 국밥집이 모인 병천순대거리도 생겼지요.” 지금도 장이 서는 날이면 시장 사람들과 천안 시민들에게 순댓국밥이 인기 메뉴란다. 4대째 이어져온 순댓집의 메뉴는 단출하다. 모둠순대 그리고 순댓국밥. 이 2가지면 충분하다. 접시 한가득 배추, 양배추, 당면, 선지, 돼지 소창을 넣은 순대와 고기를 내어준다. 사골을 오랜 시간 진하게 우려낸 국밥은 담백해 먹기가 좋았다. 인심도 좋지. 순대와 고기가 그득한 국밥에 집중하다 결국 모둠순대의 반도 먹지 못한 채로 숟가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뜨끈한 국물이 그리운 날이면 이곳의 순댓국밥이 떠오른다.


천안의 볼거리 대다수는 보훈 유적지에 집중돼 있다. 왜 유독 천안에 모여 있을까. 독립기념관으로 가는 동안 문화관광과 담당자가 내린 답은 이렇다. “이름 알려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만 1000명이 넘어요. 예로부터 천안은 지조를 지키는 사람이 많았던 곳이에요. 좋은 예가 왕건에 저항한 천안 목천 사람들입니다.” 후삼국시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왕건은 당시 백제에 속한 천안 사람들에게 자신을 섬기라 명한다. 그러나 목천 사람들은 이에 저항하며 백제의 왕 견훤을 향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왕건은 분노했고 이 지역 사람들에게 짐승을 뜻하는 성 5개를 내린다. 끝끝내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지조를 지킨 이들의 혼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다. 호서지방 최대의 만세운동이던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이 이를 증명한다.


왕건은 태조산에 올라 천안의 지형지세를 바라보며 ‘오룡쟁주’라 했다. 5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형상, 한마디로 천하 명당이라 극찬했다. 현재 천안의 3대 명당이라 불리는 땅에는 뜻깊은 건물이 세워져 있다. 태조산 줄기에 있는 망향의 동산, 태조산 입구에 위치한 각원사 그리고 흑성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독립기념관. 모두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필요’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 중 하나인 독립기념관이 이번 천안 여행에 방점을 찍는다. 천안을 대표하는 보훈 유적지로 독립운동 관련 유물과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직접 만난 독립기념관은 기념관이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나 넓은 공원에 가까웠다. 예상외로 가족이나 시민보다 더 많은 건 군복 차림의 육군이었다. “휴가 중인 육군 장병이 이곳을 방문해 해설을 듣거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휴가를 하루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까닭에 연간 육군 방문객만 16만 명에서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독립기념관 탐방의 시작점은 겨레의 탑이다. 탑을 지나면 7개 전시관이 들어선 겨레의 집에 닿는다. 1관부터 7관에 걸쳐 선사시대부터 1945년 광복의 날까지, 독립의 순간을 기록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3관과 4관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하여 이곳을 집중적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3관에서는 31운동 과정과 그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내에서 전개된 다양한 독립운동을 사료로 전시한다. 이어지는 4관에서는 독립운동의 정신, 실천, 과제, 계승이라는 4가지 주제로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고찰한다. 겨레의 집 밖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 자재로 조성한 공원, 애국선열의 시비와 어록비, 소슬한 가을바람 불 때 가장 아름답다는 단풍나무 길도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하루 꼬박 이곳에만 머물러도 아깝지가 않겠다. 곱씹을수록 감동은 짙어지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공간이다.

 

 

<2019년 3월호>


에디터 김수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천안시 문화관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