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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시대
충남 공주 무령왕릉

“백제가 공주를 도읍으로 삼았던 시절은 백제 678년 역사 중 불과 63년밖에 되지 않아요.” 고마나루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송산리고분군 입구에서 공주시 문화해설사를 만났다. 송산리고분군은 2015년에 공주의 상징인 공산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백제시대 때 왕가의 묘지로, 세월이 흐르며 이곳에는 은진 송씨의 무덤이 많아졌다. 능의 수는 27개 정도로 추측하나 발굴된 것은 7호분까지다. 바로 이 7호분이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이다. “대부분 국내의 무덤은 도굴이나 훼손으로 주인을 알 수 있는 게 드물어요. 무령왕릉은 그 이름이 정확하게 나왔어요.” 서울에서 쫓겨나듯 공주로 도읍을 옮겼던 백제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거쳤는데, 이를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해 백제의 두 번째 도약을 이뤘던 왕이 무령왕이다. 백제가 공주를 도읍으로 삼았던 시절은 짧으나 공주가 백제의 대표적 역사 문화 유적지로 꼽히는 이유는 무령왕릉 덕분이다. 


“1971년 여름, 장마가 오기 전 6호분 배수로 작업을 하던 중 무령왕릉이 발견되었어요. 6호분이 일제강점기 때 도굴되고 훼손된 걸 생각하면 무령왕릉이 늦게 발견되어 다행이죠.” 6호분은 백제 성왕 또는 동성왕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일본의 가루베 지온이란 자가 이곳에서 훔친 유물을 토대로 <백제 유적의 연구>라는 책을 썼다. 5호분, 6호분이 나란히 봉긋 솟아 있고 그 뒤로 평범한 구릉처럼 7호분 무령왕릉이 자리했는데 그랬기에 그것을 능이라 상상치 못했다.


무령왕릉 입구에는 벽돌로 축조된 내부 사진이 걸려 있다. 아치형으로 차곡차곡 쌓인 벽돌엔 연꽃 문양이 그려져 있다. 벽돌 무덤은 중국에서 온 양식이나 이를 백제의 방식으로 아기자기하고 우아하게 재해석했다. 본래는 송산리고분군 입구에 능의 내부를 그대로 재현한 전시실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봄까지 보수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었다. 이 능이 발견되기 전까진 백제 유적이나 사료가 거의 없어, 발견된 후에야 백제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1년, 벽으로 막혀 1400년 이상 진공 상태였던 능을 처음 열었던 사람들이 느낀 감정을 상상했다. 그것은 멈추어 있던 시간의 문을 열어 백제의 역사를 현재로 소환한 일이었다. 이후 공주는 백제 역사 문화의 도시로 주목받게 되었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19-2020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었다.

 

 

충남 공주

“공주는 구석기시대부터, 그러니까 무려 5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지역이에요.” 그때 흔적을 보존하고 재현해 석장리유적지와 석장리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공주는 웅진백제 이후 조선시대 때도 당시의 도청 격인 충청감영이 자리해 충청도를 관할하는 큰 도시 역할을 했다. 이후 경부선이 공주를 비켜나 대전에 만들어지며 충청도 중심이란 역할은 빼앗겼지만 1960~70년대에는 ‘공주교육대학교’와 사범대로 유명한 ‘공주대학교’ 덕분에 교육의 중심지로 불렸다. “타지에서 온 학생이 많아 제민천 인근에 하숙 골목이 형성되어 젊은 사람들로 북적였죠.” 제민천 주변은 과거 공주의 중심지였다. 백제 유적지부터 근대 유적지, 관광지까지 모두 이 지역에 있어 공주 여행은 구도심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최근엔 시에서 이곳의 오래된 주택을 보수해 ‘공주하숙마을’을 형성했다. 그 시대의 풍경이 담긴 벽화로 낡은 벽을 꾸미고 빈 주택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 반질반질한 대청마루가 있는 게스트하우스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괘종시계와 전등 갓이 운치를 더했다. 물을 끌어올리던 펌프와 뒷마당의 장독대는 어린 시절 찾던 할머니 댁을 떠올리게 했다. “금강을 기준으로 여기 원도심이 강남, 반대편은 신도심인 강북이에요. 이젠 대부분이 강북에서 살아요.” 아담한 담장, 벽돌로 지어진 주택들이 만든 좁은 골목길에는 빈집이 많았지만 차분한 색감의 벽화 덕분에 스산하기보단 정감이 갔다. 다시 제민천으로 나오니 마침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가 줄지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야구 선수 박찬호의 모교로 그 말고도 걸출한 프로야구 선수를 여럿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외투도 없이 야구복만 입은 학생들은 추위에 진저리 치면서도 일정한 속도를 맞춰 제민천을 따라 달렸다.

 

 

<2019년 2월호>


에디터 권아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공주시청 www.gongju.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