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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탄광 도시라는 정체성

겨울바람에 이끌려 태백으로 향했다. 스산하고 쓸쓸한 폐광 너머에 이 도시가 꿈꾸는 미래가 있었다.

 

태백

장성동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 동네 풍경.

 

태백체험공원

태백체험공원의 지하 갱도. 실제 함태탄광의 작업장이었던 공간이다.

 

오전 8시, 차가 강원도의 경계를 넘자 창문 밖 풍경이 한결 서늘해졌다. 잠시 들른 휴게소 안마당엔 군데군데 얼음이 얼어 있었고, 올겨울 들어 가장 세찬 바람이 안면을 강타했다. 해 뜰 무렵만 해도 날이 좋은가 싶더니 금세 눈이 올 듯 말 듯 하늘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상예보. 과연, 강원도의 겨울은 녹록지 않았다. 시청에서 관광문화과 담당자, 문화관광해설사와 만나 이리저리 지도에 줄을 긋다가 우선 남쪽부터 훑어보기로 했다. “태백은 한가운데 연화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주요 명소들이 서로 밀집해 있어요. 어디서 여정을 시작하든, 시계 방향 혹은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쭉 둘러보기 편하죠.” 그러니까 오늘 동네 한 바퀴의 시작점은 도심 남서부에 위치한 태백체험공원. 옛 함태탄광 자리에 들어선 기념관 겸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2006년 실제 탄광사무소였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처음 문을 열었어요. 내부는 탄광사택촌과 현장학습관, 체험 갱도 등으로 구성돼 있죠. 과거 광부들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요.” 사실 운영 초기만 해도 하루 평균 관람객이 채 10명을 넘지 않던 체험공원이 태백의 명소로 급부상한 건 2012년 태백탄광문화연구소와 도미술협회가 위탁 운영에 나서면서부터다. 건물 내 여러 공간을 문화예술 전시실로 개조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예술가를 후원하는 한편, 주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행사도 폭넓게 기획하기 시작한 것. 1층 연탄 찍기 체험장에서 작은 연탄을 직접 만들어보고 2층 전시실을 돌며 당시 광부들의 삶을 엿본 뒤 드디어 지하 갱도에 들어섰다. 서늘한 어둠을 따라 가만가만 걸음을 옮기자 거대한 권양기가 선로 끄트머리에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잔뜩 녹이 슬고 여기저기 부러지거나 뜯겨나간 철골 덩어리는 갱도에 괸 육중한 공기를 순식간에 과거로 회귀시켰다.

 

 

태백 체험공원 전시실

광부들이 장화 씻는 모습을 재구성한 전시실.

 

태백석탄박물관

태백석탄박물관 내부. 과거 태백의 탄광 시설이 사실적으로 재현돼 있다.

 

연탄 만들기 체험

연탄 만들기는 태백체험공원에서 반드시 해봐야 할 체험이다.

 

내친김에 인근의 태백석탄박물관에도 들르기로 했다. 태백 탄광의 역사에 관심이 커진 터라 열심히 자청한 걸음이었다. “석탄의 변천사를 한곳에 모아둔 동양 최대 규모의 석탄 박물관이에요. 1997년 개관했고, 총 8개 테마 전시관에 약 7400종의 소장품을 전시해두고 있죠.” 태백체험공원이 이름 그대로 ‘체험’에 비중을 둔 공간이라면, 태백석탄박물관은 지하 광물의 종류부터 석탄의 생성과 발견, 국내 석탄산업의 성쇠 등 석탄에 관한 여러 지식과 역사에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한다. 무엇보다 당시 광부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환경에서 생업에 매진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 내겐 무척이나 강렬했다. 당연히 광부는 위험한 직업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단순히 아는 것과 또 다른 세계가 그 깊은 지하 갱도에 숨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 유독한 가스가 새어 나올지, 광산이 무너지거나 화약이 폭발할지 알 수 없는 굴 안으로 자원해 들어가는 심정은 어땠을까. 그 모습을 매일 바라봐야 하는 가족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태백의 무수한 폐광에서 거둬온 자료는 매 순간 끊임없이 위험을 경고하고 또 안전을 기원했다. 전시관 한쪽,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 적힌 푯말이 내내 이방인의 마음을 휘저었다.

 

 

태백 벽화마을

과거 광부들이 거주했던 상장동 벽화마을.

 

태백 장성동

장성동 일대. 대한석탄공사 산하의 장성광업소가 아직 운영 중이다.

 

태백 상장동

상장동 벽화마을의 좁은 골목.

 

결국 태백의 역사는 국내 탄광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면, 한국 근대사의 역사와도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실제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던 석탄은 강원 태백, 삼척, 영월, 정선과 경북 문경, 충남 보령에서 주로 생산됐다. 그중에서도 1970년대 탄광 산업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도시가 바로 태백. 한창때 동네 개조차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만큼 번성했던 이곳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과 함께 가파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부분 탄광이 문을 닫으며 광부들이 떠났고, 수시로 현금이 오가던 광산과 역 주변 풍경도 달라졌다. 매년 감소하던 인구가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에 치달을 무렵, 태백은 폐광지 일대를 하나둘 관광 명소로 다듬으며 재기를 꿈꾸기 시작했다. 석탄이 있든 없든 결국 태백의 정체성은 탄광 도시,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산 역시 탄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1970년대 광부들의 사택촌이던 상장동 벽화마을은 2010년대 이후 태백시가 이끈 변화의 대표적 예다. “상장동은 함태와 풍전, 정암, 동해광업소 등 일대 주요 탄광의 광부 4000여 명이 모여 살던 동네예요. 2011년 뉴빌리지 태백운동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이 자진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어요.” 탄광마을과 광부들의 애환을 담은 벽화 70여 점은 밝고 따뜻한 빛깔로 채색되어 더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사이로 다닥다닥 붙은 옛 사택에선 지금도 많은 주민이 삶을 꾸려가는 중이었다. 한편, 좀 더 광범위한 ‘도시 재생’의 형태는 또 다른 폐광촌인 장성동에서 엿볼 수 있었다. 최근 장성동 일대가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는데, 그 정식 명칭은 이렇다. ‘폐광 부지에 다시 세우는 신재생·문화 발전소 에코 잡 시티 태백’. 일대의 탄광 부지와 산림자원을 활용해 재생에너지파크, 탄광테마파크, 산림자원수거센터, 지역난방센터 등을 건설, 개발하겠다는 프로젝트다. 한때 3만여 명이 북적거렸던 장성동의 현재 인구는 5000이 채 안 되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동네 전체에 옅은 활기가 감돌고 있었다.

 

 

<2019년 1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tour.taebaek.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