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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돈암서원

조선시대 예학의 중심이었던 돈암서원.

 

돈암서원 사계 김장생의 책판

돈암서원 장판각에는 사계 김장생의 책판이 남아 있다.

 

강경을 빠져나와 조선시대 예학의 중심이었던 돈암서원을 찾았다. 예학을 이끌던 사계 김장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침수 문제로 인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터라 원형이라 할 순 없으나, 예법을 따라 지은 한옥은 여전히 우아하다. 한낮에 난 따뜻한 햇볕을 잠시 쬐다 논산8경 중 1경에 해당하는 관촉사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곤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높이 18.1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며, 여느 절에서 보았던 부처상에 비해 투박한 모습이 낯설었다. “1경으로 선정된 건 아름다움 때문이 아닌 역사적 의의 때문이에요. 올해 보물 제218호에서 국보 제323호로 승격 됐죠.” 이 불상은 고려 광종 1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불상과 불교의 특징이 담겼다. 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흩어진 민심을 통합하기 위해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이전까지 지배 계급만 믿던 불교를 대중에게 전파했다. 따라서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토속적인 느낌을 내는 불상을 만들었다. 현재는 불상 앞에 법당이 있지만 고려시대엔 배례석만 있었다. 사람들이 배례석 주변으로 모여 기도를 올린 것이다. 그때 사람들처럼 불상 앞에서 올려다보았다. 마침 불상의 머리 위로 종이로 오려 붙인 듯 낮달이 걸려 있었고, 투박하다 생각했던 불상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상상하며 합장을 했다.

 

 

돈암서원의 응도당

유생들이 가르침을 받던 돈암서원의 응도당으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계백장군의 묘

충을 상징하는 소나무로 둘러싸인 계백장군의 묘.

 

관촉사의 배례석과 오층석탑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는 배례석과 오층석탑이 서 있다.

 

관촉사에서 탑정호를 따라 달리다 보면 백제를 끝까지 지켰던 계백장군의 묘가 자리한 백제군사박물관이 나온다. 나당 연합군과 백제의 치열한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능선으로 둘러싸인 넓은 부지를 공원처럼 잘 조성해 놓았다. 충忠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심어놓은 낮은 구릉을 오르자 계백장군의 묘가 나왔다. “과거엔 묘비에 전하는 곳이란 의미를 지닌 ‘전傳’자가 있었어요. 실제 계백이 이곳에 묻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전’자가 없어요. 사실로 믿기로 한 거예요.” 당시 계백은 고작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당 연합군 5만 명과 총 다섯 번의 전투에서 네 번이나 이겼다. 이 묘지는 계백장군만의 묘지가 아닌 그와 함께 싸운 5000명의 군인을 기리는 의의를 지녔다. 전쟁에서 패할 것을 예감한 듯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전투에 임했던 계백 장군과 그의 부하들의 충심이 담긴 것이다. 묘지에서 내려와 백제의 군사 문화와 논산의 역사가 담긴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백제, 고려, 조선까지 모든 역사가 논산에 있다. 

 

 

 

<2018년 12월호>

 

에디터 권아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논산시청 www.nonsa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