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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중동
텔아비브, 올드 야파와 네베 체덱

이스라엘의 문, 텔아비브 동네 산책①

 

텔아비브

밤새 비행기를 타고 이른 아침 도착한 텔아비브Tel Aviv 벤구리온 공항에서 다시 차를 타고 도심으로 향하는 길에는 상상했던 풍경이 펼쳐졌다. 푸른 대추야자나무가 늘어선 길에는 모래 빛깔을 닮은 회황색 건물이 줄을 이었다. 낙서 같기도 하고 작품 같기도 한 벽화, 그 사이로 전동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 말끔한 거리의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노란 햇살 아래 펼쳐졌다. 이스라엘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기대했던 도시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한 이후 중심 도시 역할을 해왔던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다. 해외 곳곳에 흩어졌던 유대인이 모여 건설한 도시인 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 LGBT 같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없다. 한편으로 서남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도시인 만큼 문화 수준도 뛰어나다. 여기에 지중해 도시 특유의 생기 넘치는 라이프스타일까지 갖춰, 이 도시는 한없이 젊고 역동적이다.

 

 

텔아비브

텔아비브 최초의 학교.

 

올드 야파

푸른 지중해 바다를 마주한 올드 야파.

 

올드 야파

올드 야파의 보석 같은 골목.

 

뵈렉

아침식사로 좋은 뵈렉. 짭조름한 맛이 중독성 있다.

 

공항을 출발해 미끄러지듯 달려 도착한 곳은 화려한 벽화로 꾸며진 거대한 창고와 요트가 정박한 항구가 보이는 곳, 올드 야파Old Jaffa, 히브리어로 야파Yafa라 불리는 지역이다. 바다를 마주한 창고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자리했다. 세계 여느 메트로폴리탄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죠.” 이번 여정을 안내해주는 현지 가이드 모셰가 걸음을 이으며 설명했다. 올드 야파 항구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 가나안, 팔레스타인, 로마, 비잔틴제국, 영국까지 올드 야파의 주인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19세기 말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는 텔아비브란 도시가 없었기에 올드 야파는 그 자체로 도시였다. 당시엔 대부분 아랍인이 거주했고 기독교인, 이집트인, 극소수의 유대인이 있었다. 그 후 이스라엘이 건국하고 1950년에 이르러 올드 야파가 텔아비브에 통합되면서 텔아비브의 구도심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의 올드 야파는 복잡한 역사를 뒤로한 채 평화로웠다. 더 이상 무역항으로 사용되지 않는 항구에는 작은 어선 몇 척과 휴양용 요트가 자리를 차지하고, 그 길을 따라 늘어선 야외 테라스에는 커피나 가벼운 식사를 하는 여행객과 현지인이 지중해의 온화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 허기를 채우려 빵집에 들러, 마시는 요구르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식처럼 먹는다는 뵈렉Burek을 사들고 걸었다. 뵈렉은 고기나 채소, 치즈 등으로 속을 채운 빵으로 모양이 다양하다.

 

 

텔아비브

항구의 버려진 창고에 근사한 그래피티가 그려졌다.

 

텔아비브

네베 체덱의 멋쟁이들.

 

항구를 따라 걷다 보니 18~19세기에 지은 고풍스러운 건축물로 이뤄진 낮은 언덕이 나타났다. 좁은 골목길에는 갤러리와 아틀리에가 자리했다. 쇼윈도 너머로 전통 문양을 담은 도자기며 그림, 조각품을 보느라 자꾸만 걸음을 멈췄다. 좁은 골목이 지닌 특유의 운치를 배경으로 웨딩 사진을 찍는 이들도 곳곳에 보였다. 골목을 따라 계속 오르면 탁 트인 광장에 도달한다. 1888년 프랑스인이 지은 세인트 피터스 성당St. Peter’s Church이 자리한 광장에는 빈티지 마켓이 한창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이주해온 디아스포라의 물건답게 여러 도시의 특징을 담고 있었다. “그리스정교회, 아르메니아교회,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의 것도 있어요.” 성당 주변으로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닌 예배당의 첨탑이 보였다. 서로 다른 믿음을 지닌 이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 걸음만 더 오르면 일종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하피스가 가든HaPisga Garden이 나온다. 오래된 건물로 가득한 올드 야파와 지중해 바다, 멀리 고층 건물로 이뤄진 텔아비브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다. 고층 건물로 이뤄진 시내는 과거엔 모래언덕이었다.


“네베 체덱Neve Tzedek은 야포의 바로 옆 동네예요. 텔아비브의 첫 동네이기도 하고요.” 올드 야파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낮은 건물로 이뤄진 네베 체덱에 도착했다. 처음 올드 야파로 이주했던 유대인은 1887년 북쪽 사막지대에 거주지를 마련했는데, 그때부터 ‘텔아비브ʼ란 이름이 등장했다. 당시 유럽에서 온 유대인인 아시케나지Ashkenazi가 많았는데, 부유한 이들이 살았던 만큼 집들의 수준도 뛰어났다. 그러나 내가 처음 마주한 풍경은 오래전 폐허가 된 빈집들이었다. 어지럽게 낙서가 된 건물 사이를 걷는데, 아무리 밝은 낮이라지만 위축되었다. 그런데 한 블록을 넘어서자 거짓말처럼 부티크 숍으로 가득한 긴 골목이 펼쳐졌다. 그곳에 모델처럼 꾸민 젊은이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전통 문양을 활용해 패브릭 제품을 만드는 진저Ginger, 100년 넘은 건물 내부를 그대로 간직한 패션 편집 숍 누메로13Numero 13, 수공예로 만드는 다양한 주얼리 숍 등 이스라엘의 색채를 모던하게 재해석한 디자인 제품이 쇼윈도를 장식했다. 이 골목을 빠져나가면 텔아비브 최초의 학교였던 건물이 나온다. 현재는 이스라엘 현대무용을 이끄는 극장이자 교육기관인 수잔 델랄 센터Suzanne Dellal Center로 사용 중이다. 균일한 창과 군더더기 없는 건축물이 단순함의 미학을 보여준다. 2개의 건물로 이뤄진 극장 사이에는 광장이 있는데, 그곳엔 달콤한 꽃향기가 가득했다. “하얀 꽃들이 오렌지 나무 꽃이에요. 나무 아래를 보면 이 사막지대를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가꾸었는지 알 수 있죠.” 땅에는 물이 급수되는 호수가 보였다.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지대를 비옥한 땅으로 가꾸기 위해 100년 전부터 농업 기술을 발전시킨 이스라엘은, 이제 해외로 그 기술을 수출한다. 향기로운 오렌지 꽃 아래를 걷는데 마침 무용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쏟아져 나왔다. 햇살 아래 싱그럽게 빛이 났다.

 

 

<2019년 6월호>


에디터 권아름
포토그래퍼 강신환
취재 협조 이스라엘관광청 israel.trave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