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ESTINATIONS > 아시아
DESTINATIONS - 아시아
예언과 기원의 땅, 샨르우르파

터키의 남쪽 끝에는 매일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는 곳이 있다. 3개 종교의 성지이자 최초의 신앙이 태동한 땅, 샨르우르파주의 두 도시로 향했다.

 

샨르우르파

얼마 전, 세계 역사학계를 들썩이게 한 어느 고대 유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1963년 처음 발견되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괴베클리 테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추정되는 이것은 놀랍게도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전 시대인 1만 1000년 전의 건축물이다(스톤헨지나 피라미드보다 최소 6000년 앞선다). 그러니까 신석기시대 들어 인류가 농경사회를 이룬 뒤에야 권력과 종교가 생기고 대규모 건축이 시작됐다는 기존 학계의 문명 발달 이론을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이곳 괴베클리 테페가 위치한 곳이 바로 터키 남동부, 아디야만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마주한 또 하나의 역사적 땅 샨르우르파주다.

 

샨르우르파에서의 첫 목적지가 괴베클리 테페라는 건 개인적으로 꽤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평소 고고학(을 가장한 세계의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마치 이 방문을 예견한 듯한 몇 달 전의 TV 다큐멘터리 편성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점점 고대인의 정서가 되어간다). 들뜬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자 무스타파가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잖아도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며 여기저기서 취재팀이 많이 다녀갔던 모양이다. 오전 8시 30분쯤 아디야만을 출발한 차는 11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그림 같은 언덕 앞에 도착했다. 유적지까지 이어지는 길이 나무 계단으로 깔끔하게 단장돼 있었고, 수학여행 중인 듯한 학생 무리가 격렬하게 계단을 뛰어올랐다. 간만에 보는 청명한 하늘과 노란 꽃밭, 무려 1만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언덕길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해발 760미터의 언덕 정상부에 위치한 유적지는 거대한 천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터키어로 ‘배불뚝이 언덕’이란 뜻이에요. 1960년대에 미국과 터키 대학의 공동 조사로 처음 존재가 알려졌죠. 1996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가까이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에 의해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졌고요.” 입구에서 만난 가이드를 따라 유적 가장자리에 서자, 둥글게 조성된 관람객용 통행로 아래 폐허가 된 고대 신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거의 형태만 남은 원형의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모인 가운데, ‘T’자 형태의 석회암 기둥들이 사방에 솟아 있었다. 어떤 기둥은 높이가 6미터도 넘었는데, 유적지에서 1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도구를 사용해 다듬고 운반해온 것이라 했다. “지금껏 일대에서 발굴된 기둥이 200개가 넘어요. 토기도, 바퀴도 없이 살던 수렵시대의 인류가 어떻게 저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를 다듬고 운반했을까요? 석재마다 정교하게 조각된 여러 동물의 부조도 놀랍고요.” 괴베클리 테페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우선 지속적인 거주지는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일대의 넓은 지역에 퍼져 살던 사람들이 1년에 몇 차례씩 이곳에 모여 제를 지내고 한바탕 축제를 벌인 뒤 다시 헤어졌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현재의 유적이 고작 10퍼센트 정도만 발굴된 상태라는 사실. 처음 발견된 시점에서 이미 인류의 역사를 6000년 이상 끌어올린 이 유적지는 남은 90퍼센트의 발굴 과정 중 아예 세계 문명사를 새로이 써 내려갈지도 모르겠다. 비록 살아 있는 동안 그 모든 진실과 마주할 순 없겠지만(앞으로 최소 60년은 더 걸릴 거란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괴베클리 테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

 

 

샨르우르파

도로에서 히치하이킹 중인 현지 여행객들.

 

샨르우르파

거대한 규모의 샨르우르파 모자이크 박물관.

 

샨르우르파

샨르우르파 고고학 박물관에는 온갖 시기의 유물들이 모여 있다. 3개 층만으로 인류의 역사를 모두 아우른다.

 

샨르우르파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는 늘 터키와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로 붐빈다.

 

샨르우르파

유적지 가까이에 작은 뮤지엄겸 전망 쉼터가 자리해 오가며 들르기 좋다.

 

샨르우르파

터키식 크로켓인 이칠리 쾨프테. 빵 안에 다진 고기와 채소를 넣고 튀겨낸다.

 

샨르우르파

일요 시장에는 토마토, 딸기, 바나나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과일이 가득하다.

 

샨르우르파 시내로 입성해 일대의 고고학 세계를 총망라한 샨르우르파 고고학 박물관anlıurfa Arkeoloji Müzesi에 들렀다. 괴베클리 테페는 물론 남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 고대인의 생활상을 표현한 디오라마 등이 3층 규모의 박물관 구석구석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터키에서 가장 큰 박물관 중 하나예요. 신석기시대부터 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 거주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모두 담아내고 있죠.” 내친김에 바로 옆 샨르우르파 모자이크 박물관anlıurfa Mozaik Müzesi(가지안테프와 마찬가지로 모자이크로 장식된 유적이 많이 발견됐다)까지 둘러본 뒤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에서 터키식 크로켓과 양고기 케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일요일에만 열린다는 채소 시장을 구경하다 먹음직스럽게 빨간 토마토도 잔뜩 샀다. 이제부터 또 먼 길을 달려야 하는 터라 가벼운 군것질거리가 필요했는데, 1킬로그램에 5리라(한화로 1000원도 안 된다)밖에 안 하는 토마토는 무척이나 달고 신선했다.

 

 

샨르우르파 하란성

폐허처럼 남은 하란성의 외관. 현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하란 컬처 하우스 내부

이색적인 건축미를 자랑하는 하란 컬처 하우스 내부는 각종 기념품 상점으로도 활용된다. 역시 실크로드 상인의 후예들이다.

 

하란 컬처 하우스의 입구

하란 컬처 하우스의 입구. 안쪽으로 보이는 독특한 디자인의 원추형 지붕이 하란 전통 가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샨르우르파

발륵르괼의 사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 영화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하다.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와 샨르우르파주 남동부의 하란으로 향했다. 오후 4시 30분쯤 허물어진 고성 앞에 차가 멈춰 섰을 땐 구글 지도상의 국경선 바로 근처까지 와 있었다. 조금만 높은 곳에 오르면 국경선 너머 시리아 땅도 보일 만한 위치. 정말 터키의 남쪽 끝까지 왔구나, 새삼 이 여행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란은 서쪽으로 유프라테스강, 동쪽으로 티그리스강을 끼고 메소포타미아와 아나톨리아 지역을 잇는 교통 및 무역 통로 역할을 해왔던 도시예요. 기름진 땅에 상인들까지 몰리니 당연히 고대부터 크게 번성했죠. 여러 민족과 왕조가 거쳐갔고,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도 치열했어요.” 무엇보다 하란이 흥미로웠던 건 이곳이 오늘날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의 조상으로 꼽히는 아브라함의 정신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 기독교의 탄생과 성장에 있어 무척이나 상징적인 장소였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경 아브라함이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지금의 팔레스타인)으로 가던 중 하란에서 15년간 머물다가 하느님(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TopkapıSarayı이 소장하고 있는 모세의 지팡이며 아브라함의 유품 역시 본래 이곳에 있던 것들. 술과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는 이 강건한 무슬림의 땅이 과거 초기 기독교의 본거지였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늘 기묘하다.


세월에 휩쓸리고 파괴되어 이제는 뼈대만 남은 하란성Harran Kalesi을 잠시 거닐다 인근의 하란 컬처 하우스Harran Kültür Evi로 향했다. 달걀 같은 원추형 지붕의 흙집이 오밀조밀 모인 골목길이 무척이나 이색적인 풍광을 연출했다. 집집마다 빨래가 주렁주렁 널려 있었고, 동네 아이들이 고양이처럼 흙담 위를 빠르게 내달렸다. 점점 막바지로 치달아가는 오후 햇살이 어찌나 오묘하던지, 눈앞의 풍경이 온통 주황빛이었다. 하란 컬처 하우스는 전통 방식 그대로 지어진 오래된 주택을 상점 및 쉼터, 숙박업소 등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기본적인 형태의 흙집을 여러 채 이어 붙여 규모를 키웠는데, 이는 과거 저택의 주인이던 알리 크즐이 무려 10명의 자녀와 함께 엄청난 대가족을 이뤘기 때문. 겨울에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라 꾸준히 보수가 필요하긴 해도, 높은 천장과 흙으로 만든 벽돌이 여름에는 불볕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온기를 저장해준단다. 알리 크즐의 손자와 함께 저택 안팎을 구경하고 쉼터에서 커피 한잔을 즐긴 뒤 찬찬히 저택을 나섰다. 성 앞까지 따라온 동네 아이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 말간 미소, 새까만 구슬 같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여정을 시작하기 전, 성 북쪽 언덕을 올라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로 했다. 8세기경의 사원인 울루 자미Ulu Camii와 세계 최초의 대학이 있던 폐허 너머, 무려 5000년 전의 인류가 모여 살던 고대 하란 유적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다 허물어진 석벽 일부와 기둥, 그리고 무수히 흩어진 돌무더기뿐이지만, 그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 가만히 마주하고 싶은 풍경. 이 버려진 땅이 품에 안고 잠들었을 수천 년의 시간이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샨르우르파

전통 레스토랑 제바히르 한의 입구. 밤늦도록 오가는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샨르우르파

제바히르 한에서는 샨르우르파의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을 감상하며 각종 현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샨르우르파

어둠이 내려앉은 발륵르괼. 사원의 우아한 실루엣이 샨르우르파의 밤을 밝힌다.

 

다시 차를 몰아 샨르우르파 시내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기울고 있었다. 오후 7시경, 황급히 구시가의 시장을 가로질러 륵르괼Balıklıgöl에 닿았다. 현지인들이 쉼터처럼 드나드는 이 아담한 호수 공원에는 아브라함의 무덤을 모신 사원과 아브라함의 전설이 깃든 연못이 자리한다. 실제 하란이 아브라함의 정신적 고향이라면 이곳은 이슬람교가 믿는 그의 육체적 고향(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시내 중심부 가까이에 있다). 더불어 기독교에서는 179년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서 공인된 최초의 도시 에데사를 이곳으로 보고 있다. 샨르우르파가 ‘예언자들의 고향’이라 불리며 하란과 더불어 3대 종교인들의 성지순례 명소로 꼽히는 이유다. “전설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화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불은 물로, 장작은 물고기로 변하며 이 연못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조금씩 어둠이 감기기 시작한 연못가를 돌며 물고기 먹이도 주고, 샨르우르파성 중턱까지 올라 도시의 야경도 감상하다가 마지막 목적지인 ‘제바히르 한Cevahir Han’에 도착했다. 일대의 전통 음악과 춤을 선보이는 이 명성 높은 레스토랑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따뜻한 수프와 매콤한 우르파 케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나는 이 거대한 과거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문명과 종교의 역사, 고대와 현대의 삶이 뒤엉킨 지난 일주일이 마치 꿈인 양 아득해졌다.

 


<2019년 5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