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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산, 넴루트로 가는 길

아디야만, 고대 왕국의 관문③

 

넴루트산 국립공원

다리 뒤편으로 깊은 협곡이 숨어 있는데, 그 가파른 절벽 끝이야말로 젠데레강을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고대 로마인의 다리와 21세기 터키인의 다리가 서로 경쟁하듯 마주본다.

 

아디야만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넴루트산 국립공원이었다. 콤마게네 왕국의 신성한 땅으로 추앙받던 넴루트산으로 가는 길. 워낙 고산지대라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며 아디야만에 도착한 직후부터 단단히 주의를 들은 터였다. “지금 넴루트산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어요. 불과 며칠 전에도 눈보라가 휘몰아쳤고요. 도시의 날씨와는 전혀 다르니 정말 따뜻하게 입어야 해요.” 그리하여 넴루트로 떠나는 아침, 호텔 방에 팽개쳐둔 캐리어를 뒤져 껴입을 수 있는 옷은 전부 껴입었다. 이토록 꽃이 만개한 봄날에 눈이 1미터도 넘게 쌓인 설산이라니, 현지 관광청 디렉터의 말이니 틀림없긴 하겠지만 사실 쉽게 상상이 가진 않았다. 오전 8시, 차가 아디야만 시내를 벗어나 북동쪽으로 달렸다. 넴루트의 관문 격인 산악마을 카흐타가 오늘의 첫 목적지였다. 콤마게네 왕가 여인들의 무덤인 카라쿠쉬 언덕을 지나 10시경, 거대한 강줄기 앞에 차가 멈춰 섰다. 좁은 바위 사이를 빠져나온 협곡이 돌연 삼각형 모양으로 넓어지는 곳. 첩첩이 포개진 산과 산, 바위 언덕이 마주 보는 풍경 사이로, 한눈에도 고색창연한 다리 하나가 서 있었다. “젠데레 다리Cendere Köprüsü예요. 서기 200년경 로마 제국의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세운 석교죠. 콤마게네 왕국이 로마에 편입된 이후의 유적이고요.” 무려 1800년 전 로마 군사들이 쌓은 120미터 길이의 돌다리는 좌측 석벽 귀퉁이가 움푹 파인 것만 제외하면 그야말로 놀랍도록 건재했다. 인근에 현대식 다리가 완공된 이후 보존 차원에서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는데, 사실상 앞으로도 수천 년은 끄떡없을 모양새였다. 그 유명한 로마의 건축 기술을 이곳 터키 남동부에서 확인하게 될 줄이야, 고대 제국의 위용은 과연 대단했다. 협곡을 관통하는 고원지대의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 건설 당시만 해도 입구 양쪽에 2개씩 총 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설치돼 있었으나 오늘날 남은 것은 3개뿐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자신과 아내, 두 아들에게 헌정하기 위해 기둥 4개를 세웠어요. 그런데 그가 죽은 뒤 두 아들 간에 치열한 권력 분쟁이 일어났죠. 결국 카라칼라가 동생 게타를 죽이고 유일한 통치자가 되면서 게타의 이름이 새겨진 제국의 모든 건축물을 부쉈어요. 젠데레 다리의 기둥 하나도 그때 사라졌고요.”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

넴루트산 꼭대기에 압도적인 자태로 들어선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 여기는 동쪽 테라스이고, 맞은편의 서쪽 테라스에도 같은 형태의 성소와 석상들이 자리한다.

 

예니칼레 내부

예니칼레 내부의 여러 공간은 완벽히 시간을 삼킨 채 멈춰 있다. 두껍고 견고한 석벽과 그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자꾸만 여행자의 걸음을 수백, 수천 년 전으로 이끈다.

 

젠데레강을 건너 다시 차에 오르자, 본격적인 국립공원의 영역이 펼쳐졌다. 굽이굽이 포개진 바위산 틈틈이 너른 초록 들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바람이 좀 차가워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계절은 봄. 나뭇가지 끝마다, 돌무더기 귀퉁이마다 솟아오른 연둣빛 새싹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콤마게네 왕국의 요새인 예니칼레Yeni Kale는 젠데레 다리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코자히사르 마을 인근, 약 300미터 높이의 바위 위에 세워져 있었다. “예니칼레는 ‘새로운 성New Castle’이란 뜻이에요. 13세기에 재건되며, 다른 고대 성들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죠. 흔히 카흐타성Kahta Kalesi이라고도 불리는데, 본래 콤마게네 왕국 통치자들의 성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난공불락이란 아마도 이런 요새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가파른 바위 언덕과 단 하나뿐인 출입문, 높고 두툼한 성벽까지. 건축의 모든 요소가 ‘방어’를 위해 치밀하게 설계돼 있었다. 고대로 가는 성벽길을 천천히 걸으며, 나는 한창 치열하게 전투 중인 전사들을 상상했다. 성벽 아래로 바위를 던지고, 좁은 틈으로 화살을 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고 들어오는 적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 마치 판타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옛 시대의 환영들이 성을 둘러보는 내내 주위를 맴돌았다. 전쟁이 잦은 시대, 군인들이 거주하던 요새는 하나의 작은 마을 같았다. 전투를 위한 장소는 물론 주택과 사원, 감옥, 시장 등 어지간한 생활공간이 거의 갖춰져 있었다. “현재 예니칼레는 보수공사 중이에요. 2017년부터 시작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죠. 아마 내년 초면 공식적으로 방문객들에게 개방될 거예요.” 거센 바람을 맞으며 요새 꼭대기에 오르자, 코자히사르 마을은 물론 일대 산악지대의 전경이 한눈에 담겼다. 밀도 높은 바위산과 아찔하리만치 깊은 협곡, 포효하는 강줄기의 곡선이 압도적인 풍광을 자아냈다. 터키도, 아디야만도 아닌, 옛 시대의 사라진 나라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카흐타에서의 마지막 거점지는 고대도시인 아르세미아Arsameia. 안티오쿠스 1세가 세운 콤마게네 왕국의 여름 행정수도다. “일대의 여름이 워낙 혹독하게 뜨겁다 보니 아예 왕족과 귀족들이 고산지대로 이동해 여름 한 철만 머무는 도시를 만든 거죠. 그게 아르세미아예요.” 사실 거대한 동굴 속 여름 별장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산 중턱쯤 자리한 부조였다. 두 남성이 서로 손을 맞잡고 악수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한 명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인 헤라클레스, 다른 한 명은 안티오쿠스의 아버지인 미트리다테스 1세다. “콤마게네가 독립국을 건설했을 당시만 해도, 양옆으로 로마와 파르티아 제국이 한창 세를 넓히는 중이었어요. 게다가 왕국 내부의 사정도 복잡했죠. 워낙 다양한 지역 출신의 여러 민족이 뒤섞여 지내던 터라 단합하거나 일체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이때 미트리다테스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신들과의 조약’. 당연히 실제 신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조약서에 서명을 한 건 아닐 테지만, 사실보다는 전설이, 아는 것보단 믿는 것이 우선하는 시대였다. 미트리다테스는 왕국 전역에 성소를 설치한 뒤 신과 악수하는 조각상을 세웠고, 콤마게네 사람들은 ‘신들의 보호를 받는 선택된 국민’이란 동질감 아래 하나의 국가 구성원으로서 서로 융합할 수 있었다. 고대의 신들에게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 이름을 동시에 부여하며 이를 섬기는 열강 모두에게 독립국으로서 정당성도 인정받았다. 물론 현대인의 입장에서야 더없이 황당한 이야기. 다만 이 조약 덕분에 그의 작은 왕국이 혼란의 시대에서 살아남아 짧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넴루트산 정상에도 그런 성소가 자리해요. 콤마게네 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성소죠.” 인근 농가에서 전통적인 현지식 브런치를 맛본 뒤 드디어 넴루트산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얼마쯤 달렸을까, 돌연 눈앞의 계절이 겨울로 변해 있었다. 하늘은 구름으로, 땅은 눈으로 온통 가득했다. 이토록 드라마틱한 기후 변화라니, 과연 고대인의 눈에 신들의 재간처럼 보일 법도 했다. 그러니까 이곳이 바로 콤마게네 왕국의 정신적 중심지였던 넴루트, 더불어 왕국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안티오쿠스의 무덤이 있는 장소다.

 

 

카흐타의 농가

카흐타의 작은 농가에서 생애 가장 푸짐한 브런치를 즐겼다. 여러 종류의 치즈와 꿀, 각종 소스와 요구르트, 그리고 다디단 디저트까지 현지인의 전통적인 식단 그대로다. 

 

넴루트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과연 만만치 않았다. 때마침 내린 비에 눈길이 슬러시처럼 흐물흐물해져, 자꾸만 발이 파묻히거나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수시로 흩날리는 비와 눈발, 오를수록 점점 더 가팔라지는 산세 역시 한몫을 했다. 기진맥진한 채 가까스로 동쪽 테라스에 닿았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그래서 더 비현실적이었다. 양탄자처럼 봉분을 뒤덮은 순백색 눈과 그 아래 수천 년 세월을 버텨낸 9미터 높이의 석상들. 구름 사이가 슬쩍 열리더니 갑자기 햇빛이 쏟아졌을 땐 정말이지 고대인이라도 된 듯한 심정이었다. “안티오쿠스는 신들과의 조약을 새로운 종교의 반열에 올리고자 했고, 스스로 신화를 창조했어요. 이곳 넴루트 정상의 동쪽과 서쪽에 거대한 테라스를 만들어 성소를 설치한 것도 그 일환이죠. 지금 보이는 석상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신화 속 신들인데, 그 사이에 안티오쿠스의 석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요.” 얼굴과 몸이 분리된 채(지진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신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안티오쿠스의 석상은 21세기의 여행자로 하여금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스스로를 신과 동일시한 인간. 다시 말해, 지독히도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 그 가늠할 수 없는 욕망이 넴루트산 전체를 거대한 무덤으로 만든 뒤였다. 결국 그의 생은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의 왕국은 짧은 영광 끝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허무하고, 어리석은, 그러나 무척이나 뜨거웠던 생. 죽음으로 죽음을 넘어서고자 했던 고대인의 영령이 비가 되어, 눈과 바람이 되어 넴루트산 정상을 끝없이 떠돌고 있었다.

 

 

<2019년 5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