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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야만, 사라진 고대인들의 도시

아디야만, 고대 왕국의 관문①

 

아디야만

아디야만에 도착하면 우선 생각보다 번화한 거리 풍경에 놀란다.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낯설고 소박한 땅이지만, 그 또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실제로 지금 터키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아디야만이다. 다만, 여행자들을 설레게 하는 아디야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은 누가 뭐래도 유서 깊은 ‘역사 도시’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온갖 고색창연한 유적과 유물들이 들판이며 바위산 구석구석 산재하는데, 넓게 보면 지역 전체가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특히 현지인들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유산을 만나려면 지금부터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원전 850년경 기록에 처음 등장한 이름, 현재의 터키와 시리아 일부 지역에 펼쳐져 있던 콤마게네 왕국이 그 주인공이다.

 

 

아디야만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페르레 고대도시의 네크로폴리스가 있다. 무려 2000년 전 이곳에서 올리브유를 짜고 와인을 빚던 콤마게네 사람들이 잠든 땅이다.

 

사실 사라진 고대 왕국의 흥망성쇠란 대개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콤마게네 왕국이 대륙의 동서를 잇는 정확히 중간 길목에 자리했기 때문. 지루한 이야기는 줄이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대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역사는 이렇다. 기원전 600년경까지 번성하던 아시리아 제국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패망하고, 500년경엔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으며,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략해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고작 1세기 사이에도 수많은 나라가 사라지고 또 등장하는 이 부침 많은 땅에서 콤마게네 왕국이 완전한 독립국을 건설한 건 기원전 160년경의 일이다. 당시 소아시아 근방의 패권을 장악한 국가는 서쪽의 로마 제국과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 두 열강 사이의 유일한 독립국이었던 콤마게네는 양쪽 지역을 잇는 무역 통로로서 빠르게 성장했고, 타우루스산맥이나 유프라테스강을 가로지르는 통로를 장악하며 막대한 통행세를 챙겼다. 양쪽 모두의 문화를 흡수해 능란한 외교를 펼친 한편, 철과 금, 석고 등 풍부한 지하자원 덕분에 갑옷과 무기를 만드는 데도 능숙했다. 아디야만 시내 북동쪽에 위치한 페르레 고대도시Perre Antik Kenti는 바로 그 시절의 흔적이다. 당대 콤마게네 왕국의 5대 도시 중 하나였던 페르레. 돌산을 가르면 대리석이 쏟아지고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유독 잘 자랐다는 이 풍요로운 도시 외곽에 죽은 자들의 땅인 네크로폴리스가 있다.

 

 

아디야만

소프라즈의 무덤 안으로 들어서면 고대인들의 신묘한 건축 기술에 감탄하게 된다. 도굴꾼들의 침입으로 인한 2개의 구멍을 제외하면 모든 공간이 완벽히 보존돼 있다.

 

페르레의 네크로폴리스에 들어서면 200개 이상의 암석 무덤이 이방인을 맞는다. 넓고 야트막한 바위산 구석구석이 크고 작은 구멍으로 가득하다. “콤마게네 사람들은 환생을 믿었어요. 그렇기에 시신을 환생 전까지 ‘잠시’ 보관해둘 장소가 필요했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바위산을 깎아 자신과 가족의 무덤을 직접 만들었어요. 다시 태어났을 때 필요한 재물이며 생필품도 함께 묻었고요.” 아디야만관광청의 무스타파와 함께 거대한 무덤가를 거닐며, 고대인의 삶을 이해하는 가장 선명한 길은 결국 그들의 죽음 곁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이 모은 부와 그들이 가꾼 영화는 이미 오래전 자취를 감췄지만, 견고한 바위를 깨고 다듬은 섬세한 장인의 손길, 굴마다 쏟아져 나왔다는 금은보화가 그들의 풍요로운 생을 짐작게 했다. 주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가족 수와 축적한 재물에 따라 무덤의 입구와 크기, 형태 역시 제각기 달랐다. “네크로폴리스라고 해서 무덤만 있는 게 아니에요. 화덕과 제단, 수로와 우물 등 신성한 의식을 위한 공간이 모여 있죠. 이 구멍 보이세요? 와인을 만들던 공간이에요. 과거 콤마게네는 와인 생산지로도 명성 높았거든요.” 무엇보다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 맞이한 터키 남동부의 봄이었다. 삐죽삐죽 솟은 돌무더기 사이사이, 이름 모를 풀과 들꽃이 무성했다. 사방으로 건조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고, 선명한 연둣빛 들판 너머 나비가 쉼 없이 날개를 파닥거렸다. 죽음의 땅에도 매년 꽃은 피는구나, 인간이 거쳐간 영욕의 세월 따위야 아랑곳없다는 듯 자연은 늘 거세고 힘이 넘쳤다.

 

 

아디야만

카라쿠쉬 언덕 꼭대기에는 4개의 기둥이 자리한다. 독수리와 황소, 사자 그리고 악수하는 장면을 담은 돌조각이 콤마게네 왕비와 공주들의 무덤을 지키는 중이다.

 

조금 더 지체 높으신 분들의 무덤은 공동묘지 밖에 따로 있다. 그들의 무덤은 훨씬 은밀히 감춰져 있으며, 건축 기술 또한 대단했다. 아디야만주 서쪽 베스니 일대에 위치한 소프라즈의 무덤Sofraz Tumulus이 대표적인 예다. 얼핏 봐서는 무덤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언덕 위 또 하나의 작은 언덕. 석회암 덩어리를 정교하게 자른 뒤 레고 블록처럼 빈틈없이 쌓아 올린 무덤 내부 건축은 과연 고대의 것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솜씨였다. “2000년 전 콤마게네 왕국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예요.” 한편, 부자나 귀족의 것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무덤을 확인하고 싶다면 카라쿠쉬 언덕Karaku Tepesi으로 가면 된다. 넴루트산 국립공원Nemrut DaıMilli Parkı초입의 높은 언덕 위에는 콤마게네 왕국 미트리다테스 2세의 어머니와 누이들이 잠들어 있다. 안으로 직접 들어가볼 수는 없지만, 고원지대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독수리와 사자 상이 지키는 거대한 무덤가를 거닐다 보면 카라쿠쉬 일대의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작지만 강력했던 고대 왕국의 사후 세계가 소리도 없이 그 곁을 일렁인다.

 


<2019년 5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