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ESTINATIONS > 아시아
DESTINATIONS - 아시아
터키 남동부로 떠난 시간 여행

아나톨리아반도 남동부의 도시와 평야, 고원지대를 넘나들며 완벽히 낯선 터키와 만났다. 역사와 신화를 오가는 무수한 이정표가 이 기묘한 여정을 안내했다.

 

 터키 남동부
 터키 남동부
 터키 남동부
 터키 남동부

이토록 생소한 지명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아디야만Adıyaman, 가지안테프Gaziantep 그리고 샨르우르파anlıurfa. 처음 터키의 몇몇 도시를 놓고 고민할 때부터 유난히 입에 붙지 않던(게다가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들이기도 했다. 그땐 신박한 여행지를 찾았다는 기쁨에 마냥 설렜지만, 여정을 준비하면 할수록 걱정이 앞섰다. 아예 지명조차 언급되지 않는 가이드북이나 온통 역사 이야기뿐인 학술 자료에 당황한 적도 많았다. 고대, 문명, 전설. 실제로 이 3개 지역과 관련해, 출발 전 가장 많이 수집한 단어들이다. 어떤 동네에선 전설 속 고대도시의 여름 별장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 틈에 숨어 있었고, 또 어떤 동네에선 1만여 년 전의 거대 신전이 등장해 교과서 속 인류와 문명의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땅만 파면 쏟아지는 유적과 유물들이 수천 년의 시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동네. 그도 그럴 것이, 세 도시가 자리한 남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은 인류 역사 속 무수한 문명의 터전이었다.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토대를 이뤘고, 아브라함의 고향으로서 성서의 가장 상징적인 무대가 됐으며, 실크로드의 거점지로서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했다. 온갖 신화와 전설이 고고학과 인류학의 여백 아래 저마다의 꽃을 피웠다.

 

 

제우그마 모자이크 뮤지엄

가지안테프의 자랑인 제우그마 모자이크 뮤지엄.

 

하란의 독특한 전통 가옥 내부

하란의 독특한 전통 가옥 내부. 흙으로 만든 벽돌을 둥글게 쌓아 올렸다.

 

 터키 남동부

가지안테프의 구시가 시장 한 귀퉁이에서 마주한 풍경.

 

 터키 남동부

샨르우르파의 전통 레스토랑에서 흥겨운 군무가 한창이다.

 

 터키 남동부

터키 남동부의 봄을 알리는 풍경. 유프라테스 강변 언덕에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터키 남동부

고대인들이 거주하던 유프라테스강의 어느 동굴 안. 푸른 강물 빛에 마음이 잠긴다.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자면, 사실 나는 고고학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잘 아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모험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 사라진 문명, 비문에만 등장하는 도시, 역사서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역사 이야기에 이상하리만치 빠져들곤 했다. 이를테면 <아서왕 이야기>나 <반지의 제왕> 속 세계가 언제쯤인가는 실재했을 수도 있다고 믿게 해주는 인류 문명사의 빈 구멍 같은 것들. 다만, 이런 미스터리 가득한 역사 도시를 실제 눈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종종 느껴지는 허무함 역시 알고 있다. 제멋대로 부푼 상상을 끝내 현실이 넘어서지 못하는 순간은 다시 생각해도 입맛이 쓰다. 그 풍광이나 존재감이 생각만큼 대단치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대상 자체와는 별개로 그 지역이나 현지인, 혹은 과도한 여행객 무리가 감흥을 해치는 경우가 더 많아서다. 불과 열흘쯤 전, 터키 남동부에서 마주한 세계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워낙 낯설고 정보가 부족한 지역이라 그런지 전혀 몰랐던 이야기, 기대치 못한 풍경들이 한갓진 땅 위로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유프라테스강에서 뱃놀이를 즐겼고, 인류 최초의 신전과 성서 속 예언자들의 마을을 거닐었으며, 눈발이 흩날리는 설산 꼭대기에서 모세의 기적처럼 하늘이 열리는 모습도 보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낯선 땅에서 풍경처럼 유유히 시대를 통과하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만났다.

 

 

 터키 남동부

아디야만의 또 다른 주인들.

 

 터키 남동부

고대 콤마게네 왕국의 여름 수도였던 아르세미아.

 

넴루트산 정상

넴루트산 정상에서의 한때.

 

치킨 케밥

푸짐한 치킨 케밥.

 

 터키 남동부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친절했던 아디야만 사람들.

 

샨르우르파

샨르우르파에 밤이 찾아왔다.

 

너무 일찍 거대 문명을 이룬 세계의 여러 지역이 그러하듯 실제 터키 남동부의 오늘은 과거만큼 화려하지 않다. 다만 마르마라해 지방과 지중해 지방 일대의 지나치게 상업화된 관광지들과 달리, 터키인의 전통적 환대 문화를 가장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한국으로 치면 전라도 지방과 같은 터키 미식의 본고장. 복잡하게 뒤섞인 민족과 문화, 비옥한 토양이 가꾼 식재료가 실크로드를 건너온 온갖 향신료와 만난 덕분이다. 그리하여 터키 남동부에서 보낸 일주일간, 나는 편견과 상상을 넘어 완전한 미지의 세계와 조우했다. 무엇을 봐도 새로웠고, 누구를 만나도 깊이 감동했다. 매 순간이 생애 최초의 모험 같았다.

 

 

<2019년 5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