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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북미
낯섦과 익숙함 사이, 퀘벡 시티
오롯이 첫인상을 간직하고 싶은 도시와 매번 새롭게 떠나고 싶은 도시가 있다.
전자라 믿었던 퀘벡 시티는 알고 보니 후자였다.

퀘벡
몽모랑시 폭포
퀘벡 시티에서 차로 20분가량 달리면 나타나는 코트 드 보드레 지방의 명소 몽모랑시 폭포.

메이플로드
세인트로렌스 강 한복판에 떠 있는 오를레앙 섬에선 캐나다 메이플로드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카르티에 거리
도시의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카르티에 거리는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찾아도 늘 활기 넘친다.

로어타운을 잇는 목 부러진 계단
구시가지의 어퍼타운과 로어타운을 잇는 목 부러지는 계단.

크레페가
성 안 생장 거리의 맛집 ‘오 프티 쿠앵 브르통’에서는 자신의 크레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목 부러지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프티 샹플랭 거리
목 부러지는 계단에서 내려다본 프티 샹플랭 거리.

예술의 거리 트레조르에서 만난 ‘그림 그리는 노신사’.
예술의 거리 트레조르에서 만난 ‘그림 그리는 노신사’.

세인트로렌스 강변을 따라 이어진 크고 작은 골목은 구시가지 최고의 산책 코스다.
세인트로렌스 강변을 따라 이어진 크고 작은 골목은 구시가지 최고의 산책 코스다.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어떤 여행지는 묻어두었던 과거의 꿈 같다. 완전히 잊힌 듯 자취를 감추었다가도 가끔 느닷없이 나타나 기억의 심해를 헤집는다. 인간의 기억이란 본래 허약하고 자기 본위투성이인지라 열심히 과거를 포장하며 추억을 살찌운다. 아름다웠던 기억은 점점 더 아름 다워지고, 눈부셨던 풍경은 점점 더 눈부셔진다. 이런 여행지는 다시 떠나기가 쉽지 않다. 언제나 처음 기억 그대로 아름답고 눈부시게 남겨두고 싶은 욕망이 큰 탓이다. 내겐 퀘벡 시티Québec City가 그런 곳이었다. 6년 전쯤인가 처음 발 디뎠던 캐나다의 동남쪽 끝자락. '캐나다 속 프랑스’란 별명만큼이나 고고하고 자존심 센 프렌치 캐나디안들의 주도는 마치 빛바랜 동화책의 삽화처럼 오랜 시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쉬이 변하지 않을 도시임을 알기에 내심 안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떠나고 싶은 마음 보다는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더 애틋했다.

이런저런 복잡한 심경을 제쳐두고 6년 만에 다시 퀘벡행 비행기에 오른 데는 tvN 드라마 <도깨비>의 영향이 컸음을 미리 밝혀야겠다. 슈트 핏이 끝내주는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의 운명을 타고난 열아홉 살 소녀. 흔치 않은 설정이라든지 주인공 역할을 맡은 두 배우, 한국사에 ‘길라임’이란 이름을 남긴 작가의 명성이 아니더라도 <도깨비>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건 주요 촬영지로 거론된 퀘벡 시티란 지명. 기억 속에 아름답게 봉인되어 있다가 갑자기 현실로 나타난 여행지는 이후 끊임없이 마음 한구석을 서성였다. 여전히 그대로일까, 당연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내가 갖고 있는 기억이란 게 온전하긴 한 걸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기를 바라는 옛 연인 같은 마음과 조금이나마 새로워진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여행자로서의 기대가 치열하게 교차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 도시에 왔다.

퀘벡 시티에 머무는 3일 내내 비가 내렸다. 새파란 하늘과 투명한 햇살, 살랑거리는 꽃과 단풍잎들. 마냥 풍요로웠던 기억 속 풍경들이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괜히 왔구나, 싶었다. 그저 오롯이 남겨둬야 할 여행지도 있는 법이구나, 자조했다. 한겨울을 목전에 둔 도시는 춥고, 어수선하고, 내내 강풍이 불었다. 아예 눈이라도 왔으면 좋을걸, 그렇게 생각한 건 첫째 날이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비에 젖은 도시를 걷고 또 걸었다. 둘째 날엔 우산이 영 거추장스럽다고 느꼈고, 셋째 날쯤 되니 내 얼굴과 커피 취향을 기억하는 카페가 생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북미 유일의 성곽 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 도시. 인구의 8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프렌치 캐나디안들이 프랑스보다도 더 프랑스적으로 가꿔온 이 도시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과 끊임없이 변화 하는 것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고집스러우면서도 유연했고, 거리는 익숙하 면서도 새로웠다. 무엇보다 비바람이 심술궂게 휘몰아치는 퀘벡 시티는 관광객이 아닌 퀘베쿠아들의 땅이었다. 동화 속 삽화 같은 빛바랜 아름다움을 뒤로한 채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는 익숙했던 이 여정을 매번 새로 시작하게 했다.


<2017년 1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류현경
취재 협조 캐나다관광청 www.keepexploring.kr
사진 제공 캐나다관광청, <더 트래블러>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