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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유럽
불과 물, 태초의 자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화산과 호수의 땅, 캄차카를 이루는 대자연은 거친 만큼 뜨겁고 냉혹한 만큼 장엄하다.

 

캄차카
캄차카

아바친스키 중턱의 베이스캠프 주변. 화산재로 덮인 설원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캄차카

무트놉스키 정상으로 향하는 길.

 

ВулкÁн 화산
아마도 캄차카의 가장 본질적인 정체성은 ‘화산’일 것이다.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화산을 품은 땅, 지구상 활화산의 10퍼센트가 모여 있다는 이곳에선 화산만큼 가깝고 친숙한 대자연의 영역도 드물다. 존재하는 화산의 수만 약 160개에 달하고, 그중 29곳에선 여전히 용암과 마그마가 부글거리며 뜨거운 가스를 뿜어낸다. 빙하와 만년설, 간헐천, 온천, 폭포, 호수 등 반도의 자연을 이루는 대부분의 요소가 바로 이 화산활동에서 비롯했다. 어떤 여행자든 캄차카에서 꼭 해야 할 액티비티로 화산 트레킹부터 꼽는 이유다. 일단 트레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우선 난도가 낮은 지역부터 공략하는 것이 좋겠다. 보통 여행객들은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에 처음 여정을 풀게 되는데, 이 도시의 어느 지역에서든 고개만 들면 마주 보이는 2개의 활화산이 아바친스키와 코략스키Koryaksky. 그중에서도 백두산과 비슷한 높이의 아바친스키는 그리 험악하지 않은(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트레킹 코스와 도저히 지구상의 것 같지 않은 풍광 덕분에 많은 여행자에게 1순위로 꼽히는 곳이다. 물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인 데다 상부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 산악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우선 특수 개조한 산악용 차량을 타고 해발 900미터의 베이스캠프에 오르는 것이 1차 코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는데, 대개 최종 목적지로 삼는 낙타봉 정상까지 왕복 4시간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통나무 산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하룻밤 쉬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무것도 없는 화산 중턱에서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싶겠지만, 베이스캠프 주변의 풍경조차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 그저 걷거나 감상하는 것만으로 완벽히 일상과 격리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새하얀 설원 위로 파도 치듯 넘실거리는 화산재, 거대한 짐승처럼 산기슭을 느리게 통과하는 안개의 움직임까지, 아바친스키가 품은 풍경은 한 편의 흑백영화 같다. 초입부터 화산재의 흔적이 유난히 짙은데, 비교적 최근인 2008년에도 한바탕 분출이 일어났다고 한다. 낙타봉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면 다음으로 추천하는 코스는 무트놉스키Mutnovsky다. 한여름마다 툰드라 초지가 펼쳐지는 아바친스키와 달리, 무트놉스키 정상부의 눈은 쉽게 녹지 않아 언제 찾아도 웅장하고 압도적인 설경을 마주할 수 있단다. 차로 이동하는 사이사이 빌류친스키Vilyuchinsky 조망대나 데인저러스 캐니언처럼 잠시 멈춰 풍광을 즐길 만한 곳도 많다. 캄차카의 화산 트레킹 루트는 이외에도 다양하지만, 어딜 선택하든 날씨의 영향을 무척 예민하게 받는다. 일단 비나 눈이 많이 내리면 등산은커녕 차로 코스에 진입하는 것조차 위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극지방의 날씨가 워낙 변덕이 심하다는 건데, 이 때문에 일정이 바뀌거나 취소되는 일도 예사다. 물론 접근하기 어려울수록 황홀한 비경을 약속하는 것이 바로 대자연. 그 모든 번거로움과 고된 산행의 대가만큼은 확실하다.

 

 

캄차카

캄차카 땅의 모서리에선 늘 광활한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캄차카 아바차만

아바차만의 상징으로 꼽히는 삼형제 바위. 크루즈 투어의 첫 포인트다.

 

Море 바다
반도의 삶은 태생적으로 바다와 밀접하다. 캄차카 역시 마찬가지다. 동서로 캄차카를 감싼 오호츠크해와 베링해는 오랜 시간 토착 원주민의 삶을 지탱해주었고, 지금까지도 러시아 해양산업의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페트로파블롭스크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가 시작되고 발전한 만큼 항구가 위치한 아바차만Avacha Bay의 존재감이 무척이나 크다. 실제로 북반구에서 가장 큰 만인 아바차만은 아바차강과 파라툰카강이 북태평양과 만나는 자리에서 다양한 해양자원을 낳았다. 오늘날 일대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은 바다사자와 범고래. 더불어 알래스카 고등어, 농어, 넙치, 광어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 천혜의 어장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먼 옛날의 탐험가들처럼 북태평양 한복판까지 내달리진 못하더라도, 캄차카에 왔다면 적어도 반나절쯤은 할애해 선상 낚시를 즐겨볼 만하다. 이때 아바차만 크루즈 투어를 권한다. 보트를 타고 아바차만을 가로질러 스타리치코프섬Ostrov Starichkov까지 돌아보는 코스인데, 낚시는 물론 수려한 해안가 풍광을 만끽하며 여러 해양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 워낙 투어업체가 많은 만큼 프로그램의 종류나 투어 시간도 다양하지만 사실상 거쳐가는 코스는 모두 엇비슷하다. 선착장을 떠난 배가 맨 처음 속도를 늦추는 포인트는 삼형제 바위Tri Brata. 아바차만 초입에서 바다 폭이 가장 좁아지는 지점에 3개의 기암괴석이 나란히 솟아 있는데, 과거 캄차카의 삼형제가 해일을 막기 위해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배가 아바차만을 벗어나 캄차카반도의 남쪽 해안선을 훑기 시작하면 슬슬 낚시도구를 챙길 때가 됐다는 의미. 물론 팔뚝만 한 대어를 낚으면야 더없이 좋겠지만(보통 넙치류가 많이 잡힌다), 사실 고기를 낚든 못 낚든 낯선 대양 한가운데 낚싯대를 드리운 채 설렁설렁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막 잡아 올린 물고기, 잠수부가 채취해온 성게나 킹 크래브 등의 해산물을 즉석에서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낚시 포인트를 이리저리 옮기며 바다사자의 서식지, 유네스코 지정 해양조류 보호구역인 스타리치코프섬까지 돌고 나면 크루즈 투어는 끝. 보통 반나절, 길어도 한나절이면 끝나는 일정이지만 야무진 코스 메뉴 같은 프로그램 구성 덕분에 여행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캄차카의 바다를 마주하는 또 다른 방법은 사륜구동 지프를 타고 반도의 한쪽 끝까지 내달리는 것이다. 우선 육지에서 삼형제 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는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의 남쪽 해안가 산기슭에 자리한 하트 모양 벤치. 여기서부터 길 없는 길을 달려 아바차만 초입의 절벽 모서리까지 이르면 우측으로 아바차만, 좌측으로 북태평양이 맞닿는 장엄한 바다 전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섬세한 자작나무 숲 아래 깎아지른 듯 날카로운 절벽, 엄청난 수의 바닷새 군단이 활보하는 망망대해 사이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피크닉을 즐기는 경험도 색다르다.

 

 

캄차카  쿠릴 호수

헬기에서 내려다본 쿠릴 호숫가의 풍경. 곧 어마어마한 수의 연어 떼가 이 호수로 몰려들 거다.

 

캄차카

호숫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새끼 불곰 두 마리.

 

Óзеро 호수
캄차카의 원시 자연을 이루는 또 하나의 강력한 존재는 호수다. 휘어지고 갈라진 화산지대 곳곳에 크고 작은 칼데라호가 자리한 가운데, 무수한 하천과 강이 실핏줄처럼 반도 구석구석 퍼져 있다. 매년 여름이면 대양을 떠돌던 태평양 연어의 20퍼센트가량이 산란을 위해 이곳 캄차카의 호수로 돌아온다. 캄차카가 세계 최대의 불곰 서식지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그 때문. 불곰의 고향이란 별칭은 곧 연어의 고향이란 뜻이기도 하다. 가장 유명한 곳이 야생 곰 다큐멘터리의 단골 촬영지인 쿠릴 호수다. 만약 불곰을 보기 위해 캄차카를 찾았다면 다른 지역은 몰라도 쿠릴 호수만큼은 반드시 들러야 한다. 특히 8월경 이 호수로 회귀하는 연어 떼는 대략 150만 마리. 불곰으로서는 1년을 기다려온 대목의 시기다. 그러니까 때를 잘 맞춰 방문하기만 하면 쿠릴 호수에서 불곰을 만날 확률은 100퍼센트에 가깝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현란한 발재간으로 연어를 낚아채는 수십 마리 불곰 떼를 말이다. 대개 연어잡이에 몰두하느라 인간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만, 어쨌든 야생 곰이 득실대는 땅을 휘젓는 일이 위험한 여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항시 전문 가이드와 동행하고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쿠릴 호수까지는 헬기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프로드 차량으로도 이동은 가능하지만, 반도 남쪽으로 거의 도로가 없어 길고 험난한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헬기 투어 역시 날씨에 민감한 탓에 보통 7~10월 정도만 운영되고, 한창 시즌일 때도 취소되는 일이 잦다. 여정은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 근교의 헬기 탑승장에서 시작된다. 빌류친스키와 무트놉스키, 호투트카Khodutka, 젤톱스키Zheltovsky 등의 화산을 차례로 지나 반도 최남단에 도착하면, 온통 만년설로 가득했던 산악지대에 돌연 드넓은 청록빛 세계가 펼쳐진다. 착륙지는 호숫가 가장자리에 위치한 베이스캠프. 이곳에 안전요원이 상주하는데, 여행객을 안내하든 휴식을 취하든 늘 총을 소지하고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면 이 아름다운 호숫가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야생의 영역인지 실감하게 된다(불곰이 목표물에 달려들 땐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단다). 한창 땐 베이스캠프 주변을 도는 것만으로 불곰 몇 마리쯤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사실 좀 더 본격적인 액티비티는 보트 투어와 래프팅이다. 보트를 타고 호수와 주변 강줄기를 깊숙이 탐험하는 사이, 수십 마리 불곰이 물가로 뛰어들어 연어 떼를 헤집는, TV 다큐멘터리 채널에서나 보던 광경이 코앞에서 펼쳐진다.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 그 냉혹하고도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선 인간의 어떤 수식어도 무용해진다. 약 8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성된 수심 316미터의 칼데라호는 오늘날 캄차카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친 야생의 땅으로 각인시켰다. 재앙 속에서 꽃핀 강인한 생명력, 무수한 야생동물의 삶과 죽음이 남부 캄차카 자연보호구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2019년 7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하나투어 www.hanatour.com 프라이드통상, 바이칼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