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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큐멘터리 너머의 세계

거친 야생의 땅을 누비고 킬리만자로 커피를 맛보며 인도양의 뜨거운 석양을 즐겼다. 그간 아프리카 대륙에 품어온 오랜 연정을 이곳 탄자니아에서 보상받았다.

 

탄자니아
탄자니아

아프리카 대평원의 오후, 톰슨가젤 무리가 수풀 틈을 타박타박 오간다. 메마른 풀잎 사이로 미끈한 네 다리가 서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너른 초원에선 찰나도 ‘한가로운 순간’이란 없다. 서로 나눠 사는 구역도, 암묵적인 평화 협정도 없다. 포식자는 늘 가까이 있고, 언제나 순간의 빈틈을 찾아내 목숨을 앗아간다. 물론 최상위 포식자에게도 역경의 순간은 존재한다.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에 건기가 깊어지면 물과 먹이를 찾기 위한 초식동물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케냐 국경 너머 북쪽으로, 초원 위 물 냄새를 좇아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대장정 때마다 남은 자의 생존 싸움은 더욱 치열해진다. 건기에 태어난 새끼 사자는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 좀 냉정히 말하면, 사실 그건 이 세계가 거대한 균형을 유지하는 과정일 것이다. 생명을 지닌 것들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매 순간 도망치고 뒤쫓고 물어뜯는 사이, 자연은 아주 공정하고 혹독하게 이 세계를 지배한다. 이곳에서 부자연스러운 생명체는 지금 지프에 올라 망원경으로 이들을 관찰하는 존재, 인간뿐이다.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스톤타운

잔지바르의 스톤타운 한복판에서 만난 소년소녀들.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오후. © 김현민

 

팅가팅가 미술협동조합

다르에스살람에 위치한 팅가팅가 미술협동조합 앞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가 즐비하다. © 김현민

 

세렝게티 국립공원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두 존재.

 

탄자니아

잔지바르 북부의 향신료 농장으로 가는 길.

 

탄자니아

마랑구의 바부 커피 농장 안.

 

누구에게나 낙원이 있다. 지금 발 디딘 현실에는 없는 것, 꿈꾸게 하는 것, 꿈꾸는 것만으로 당장 오늘은 충분한 것. 낙원을 하나씩 품고 사는 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엔, 세렝게티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뜨거웠다. 일찍이 야생 다큐멘터리에 눈뜨기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다. 황금빛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그 위로 무수한 야생동물이 노니는 지구 반대편의 거대한 평야. 바로 가까이에(지도상으론 가까워 보였다) 우뚝 솟은 킬리만자로Mount Kilimanjaro의 만년설은 또 어떠한가. 단언할 순 없지만, 아마도 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낙원을 간직해왔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는 알아도 그 2곳이 같은 나라, 즉 탄자니아에 속한 지역이란 건 모르는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륙 동부, 인도양과 맞닿은 곳에 자리한 탄자니아는 인접한 다른 지역에 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한결 안정된 나라다. 아프리카의 무수한 나라에서 지금도 치열하게 겪고 있는 내전이나 분쟁, 독재 정권에서 자유롭고,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로 대변되는 세계적인 관광지를 품고 있어 매년 무수한 여행객이 이 땅을 찾는다. 지구에서 가장 큰 분화구인 응고롱고로Ngorongoro를 비롯해 총 7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인류의 발상지라 추정되는 협곡, 인도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이 탄자니아 곳곳에 흩어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야생동물이 무리를 이뤄 살아가는 대자연의 땅, 인간이 만든 규칙 따위야 아무 소용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지구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세계다. 삶의 어떤 순간도 쉬이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내가 이 오래된 낙원에 직접 두 발을 딛게 될 줄 몰랐다. 끝없는 초원을 내달리고, 사자와 1미터 거리에서 조우하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내 생애 어떤 순간보다 강렬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스톤타운의 해산물 식당

잔지바르 스톤타운의 해산물 식당에서 맛본 문어 요리.

 

탄자니아 마사이 소년

마사이 소년과의 조우.

 

탄자니아

코뿔소는 응고롱고로 분화구 안에서도 무척 희소한 존재다.

 

세렝게티는 역시나 세렝게티였다. 사흘간 드넓은 국립공원을 구석구석 누비며, 나는 이 땅에 쏟아지는 찬사의 이유를 매 순간 온몸으로 느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킬리만자로 정상부의 만년설을 볼 순 없었지만, 빛조차 조심스레 지나는 깊은 야생의 숲이 얼마나 형형한 빛깔을 뿜어내는지도 알게 됐다. 가장 예상치 못한 땅은 잔지바르였다. 페리를 타고 2시간쯤 달렸을 뿐인데, 지금까지 본 탄자니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돌연 눈앞에 들이닥쳤다. 아랍과 인도, 유럽 양식이 뒤엉킨 구시가의 묘한 공기 속을 헤매며, 이 땅을 훑고 간 오랜 침략과 지배, 노예 무역의 스산한 역사를 마주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 앞을 서성이던 탄자니아에서의 마지막 오후, 무수한 단상이 닳고 닳은 돌바닥 위를 스쳐갔다. 여정 내내 끈질기게 따라붙던 비구름이 걷히고 사방으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아주 뜨겁고도 아득한, 낙원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2019년 12월호>


글,사진 류현경(프리랜서)
사진 제공 탄자니아관광청, 이진원(스토리포토웍스)
취재 협조 탄자니아관광청 www.tanzaniatourism.go.tz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