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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유럽
벨기에 브뤼헤, 물 위의 낭만 도시

벨기에 플랜더스 네 도시 이야기③

 

브뤼헤 전경

주황색 지붕의 오래된 집.

 

 

마르크트 광장에 서 있는 종루

마르크트 광장에 서 있는 종루는 1미터가량 기울어졌다.

 

운하로 드리워진 나무와 돌집, 벽돌 첨탑, 유유히 흐르는 물 위를 떠다니는 배… 어디를 가도 ‘동화 같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곳, 브뤼헤는 벨기에에서 브뤼셀 다음으로 알려진 관광지다. 많은 다리로 연결된 브뤼헤는 12세기 초, 보두앵 2세가 성을 쌓은 이래 1180년까지 플랜더스의 수도를 이루었고, 13~14세기에는 교역 도시로 전성기를 누렸다. 도시 전체가 운하에 둘러싸인 물의 도시, 중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브뤼헤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돌로 된 길을 자박자박 걷거나 운하를 따라 보트를 타거나 마차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다니노라면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도시 중앙 마르크트 광장의 거대하고 유서 깊은 건물에 자리 잡은 역사관은 브뤼헤 여행을 시작하기에 좋은 곳이다. 역사관 2층 그랜드 비어 카페에서는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앙에 서 있는 얀 브레이델과 피에테 드 코닝크(두 사람은 1302년 대 프랑스 봉기 때 활약한 도시의 영웅이다)의 상과 우뚝 솟은 종루, 계단 모양의 맞배지붕이 아름다운 길드 하우스, 중세풍이 물씬한 광장에는 노천카페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관광객을 운송하는 마차 등으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광장에는 요일마다 다른 장이 선다. 
광장 한편에 서 있는 종루는 여느 중세시대의 종루와는 다른 모양이다. 정상이 팔각형으로 되어 있어 마치 웨딩 케이크 같은데, 자세히 보면 약간 기울어졌다. 1미터 정도 기울었는데, 5미터가 기운 피사의 사탑에 비하면 낫다고 해야 할까. 종루는 한 번에 관광객 90명만 입장 가능하다. 366개의 나선 돌계단을 올라가면 그림 같은 브뤼헤의 전망이 펼쳐진다.
 

브뤼헤 운하

브뤼헤에서는 크루즈를 타고 운하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투어를 해봐야 한다.

 

브뤼헤

맨홀 뚜껑조차 낭만적이다.

 

브뤼헤 레이스 잡화점

브뤼헤는 레이스 수공업으로 유명한 도시로, 골목마다 레이스 숍이 많다.

 

운하 도시 브뤼헤에서는 무조건 크루즈를 타야 한다. 브뤼헤의 운하는 겐트보다 좁고 길어서 운하 주변의 집과 더 가까이 붙어 있는 느낌이다.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오래된 집의 창문을 구경하거나, 공원을 노니는 백조를 감상하거나, 붉은 벽돌 외관의 고풍스러운 성당을 지나다 보면 플랜더스 화가의 그림 속을 노니는 기분이 든다. 작은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수공예 숍이 많다. 브뤼헤는 레이스 가공으로 유명한 도시다. 벨기에 레이스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부터 레이스 기술이 발달한 베네치아와 같은 시기에 안트워프에서 시작되어 각지로 퍼졌다. 16~17세기 플랜더스 회화에서 볼 수 있듯 레이스는 귀족과 부유한 상인의 옷깃이나 소매를 장식했다. 특히 남성복 쪽이 화려했다. 숍에서 파는 것은 대부분 기계 자수이지만 그중에는 예술품이라고 할 만한 수준 높은 수공예품을 파는 숍도 있다.

 

 맥주 양조장 ‘할브 만’

브뤼헤의 대표적인 맥주 양조장 ‘할브 만’은 1856년 창업,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브뤼헤에서 한 끼 정도는 양조장에서 해결해도 좋다. 할브 만De Halve Maan은 1856년 창업한 가족 양조장으로,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맥아와 홉에 이 양조장만의 비법인 특별한 이스트를 사용해, 깊은 맛이 매력적이다. 할브 만의 대표적인 맥주 조트Zot(발음을 주의해야 한다. 현지에서 사용하는 플라망어로 ‘광대’를 뜻한다)는 진한 황금 빛깔과 과일 향이 감도는 풍미가 일품이다. 벨기에 감자튀김과 맥주는 환상의 궁합이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양조 과정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으며 견학 후 시음도 할 수 있다. 매 정시에 가이드 투어가 시작되기에 기다리는 사이 근처에 위치한 베긴회 수녀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플랜더스의 백작 부인 마그리트가 1245년에 설립한 베네딕트파 수녀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베긴회는 12세기에 리에주의 사제 랑베르르 베그가 일으킨 운동으로 봉건사회에서 소외당한 독신 여성과 미망인들의 생활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100년 이상 된 수녀원은 종교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집과 고요한 수도원식 정원을 갖추고 있어 잠시만 걸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길게 드리워진 나무 아래 잘 자란 잔디 위를 산책한 후 수십 마리의 백조가 노니는 사랑의 호숫가를 거닌다.

 

‘초콜릿라인’의 본점

벨기에 최고의 초콜릿 브랜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초콜릿라인’의 본점.

 

골목을 걷다 보면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초콜릿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브뤼헤는 최고의 초콜릿 도시다. 50명 이상의 초콜릿 제조업자가 있으며 심지어 초콜릿 실험실 역할을 하는 초콜릿 박물관도 있다. 수많은 초콜릿 상점 중 딱 한 곳을 가야한다면, ‘초콜릿라인’을 권한다. 도미니크 페르소네는 벨기에 초콜릿을 세계적인 초콜릿으로 격상시킨 사람이다. 생강 퓌레나 고추냉이 같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실험적인 초콜릿을 만드는 ‘초콜릿라인’의 본점이 브뤼헤에 위치해 있다. 규모가 큰  매장에서는 그램(g)당 무게를 재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까지 볼 수 있어서 늘 사람들로 붐빈다.

 

리지스 와플

가이드가 추천한 리지스 와플.

 

산책을 하다 출출해져서 가이드가 추천한 와플 가게 리지스 와플Lizzies Wafels로 향했다. 이곳에서 맛본 와플은 격자무늬가 있는 커다란 직사각형 케이크 모양의 브뤼셀 와플이다. 크기가 커서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겉은 바삭, 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녹아,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제 초콜릿 시럽과 슈거 파우더를 뿌린 와플을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으니, 내가 그동안 먹은 것은 와플이 아닌 밀가루 반죽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을 연 지 5년밖에 안 됐지만 ‘정통 벨기에 와플’을 고수하고 있다는 주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흐뢰닝헤 미술관은 브뤼헤 최고의 미술관이다. 데이베르 Dijver 거리에서 조금 들어가 조요한 곳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플랜더스 지역 그림만 소장하고 있다. 14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광범위한 작품이 모여 있다. 본관에는 브뤼헤 부호의 예배당용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는 얀 반에이크의 대작 <반 데르 팔러가 있는 성모자상>과 바우츠, 한스 멤링 등의 초기 플랜더스 회화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2019년 11월호>


에디터 여하연
사진 이두용(프리랜서)
취재 협조 플랜더스 지역 관광청, 브뤼셀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