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OMESTIC - DOMESTIC TRAVEL
근대 조선인의 터전, 옥단이길을 걷다

신新 목포유랑②

 

목포의 밤

유달유원지 남쪽에서 마주한 목포의 밤.

 

목포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

목포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의 흔한 새벽 풍경.

 

목포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

경매가 끝나면 곧바로 해산물을 포장해 트럭에 싣는다.

 

새벽 4시,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그간 여러 항구도시를 여행하면서도 경매장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는데, 목포수협의 경매가 매일 4시 30분에서 5시 사이 시작한다는 걸 한 어부에게서 전해 들은 탓이다.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를 뚫고 목포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으로 내달리니 4시 30분 언저리. 부둣가 바로 앞, 창고 건물 여러 채를 이어 붙인 위판장은 이미 상인들로 북적거렸고, 막 고기잡이 배에서 끌어올린 해산물이 사방에 즐비했다. 제철인 먹갈치는 물론 민어와 홍어, 참조기, 병어, 꽃게 등이 나무 상자마다 빼곡히 담긴 채 영롱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5시쯤 되자 경매는 신속하게 이뤄졌다. 초 단위로 가격을 올리는 노련한 경매사와 쟁탈에 익숙해진 상인들 틈에서 그저 멀뚱멀뚱 구경만 할 뿐이었지만, 목포의 아침을 여는 풍경이란 이런 것이구나, 새삼 그 치열한 공기에 압도당했다.

 

 

연희네 슈퍼와 시화골목 사이

연희네 슈퍼와 시화골목 사이.

 

환경 갤러리

바다가 보이는 마당 앞 작은 환경 갤러리 내부.

 

목포의 맛 중깐

맛보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목포의 맛 중깐.

 

목포해상케이블카

지난 9월 6일 개통한 목포해상케이블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문화관광해설사를 다시 만났다. 어제 오거리 너머 조선인 거주지를 궁금해하던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예정에도 없던 시간을 쪼개 아침 산책을 돕겠다고 나선 것. 고마움과 미안함이 엉킨 복잡한 마음으로, 나는 어머니뻘 되는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다시 길을 나섰다. 만인계웰컴센터 앞에서 시작한 2일 차 산책의 테마는 ‘남촌과 북촌의 대비’였다. “1920~30년대 목포는 근대적 도시로 급성장했지만, 그 경제권을 장악한 건 일본인이었어요. 일본인 생활권인 남촌과 조선인 생활권인 북촌의 차별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각해졌죠. 당시 북촌의 생활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코스가 오늘날 목원동에 조성된 옥단이길이에요.”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이 쓴 <옥단어!>의 주인공 옥단이는 과거 목포 원도심에 실존했던 물장수 여인이다. 그는 1930년대부터 해방 무렵까지 매일 물지게를 지고 목원동 일대를 누비며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했는데, 그 실핏줄 같은 골목길이 오늘날 4.6킬로미터의 투어 코스로 개발돼 있단다. 실제로 옥단이길 표지판을 따라 오거리와 정광정혜원, 노적봉, 목포청년회관, 벽화마을 등 20곳의 주요 포인트를 지나는 사이, 굴곡진 역사를 거쳐간 목포 시민들의 삶이 사방에서 너풀거렸다. “노적봉에 대해선 들어본 적 있죠? 과거 이순신 장군이 유달산 봉우리에 마치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노적을 덮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왜적을 물리쳤던 장소예요. 정광정혜원은 법정 스님과 고은 시인이 만난 일본식 사찰이고요.” 곳곳에 명소를 포갠 옥단이길은 한 번에 돌파하기엔 제법 긴 코스였지만,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차범석과 박화성 같은 문학가를 비롯해 승무의 거장이던 한국무용가 이매방, ‘목포의 눈물’로 알려진 가수 이난영 등 구석구석 벽화로 새겨진 목포 출신 유명 인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전 내내 이어진 산책의 최종 목적지는 연희네 슈퍼. 영화 <1987>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올해 1분기에만 5만여 관광객이 찾아오며 목포의 주요 명소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현재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는 연희네 슈퍼, 1980년대 의상이며 소품을 빌려주는 연희네 문구사 등을 둘러보다 시화골목의 계단길을 따라 바다가 보이는 마당(일명 ‘바보마당’)에 올라섰다. 일대의 건물이며 쪽방 대부분이 작은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대단한 작품은 없어도 한 곳씩 들러가며 구경하기 좋았다.


마라톤 같은 산책이 끝난 뒤 언덕 아래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나니 금세 배가 고파왔다. 오늘의 점심 후보는 ‘독천식당’의 낙지 요리와 ‘중화루’의 중깐(유니짜장의 목포식 이름). 목포에서의 마지막 식사이니만큼 장고를 거듭하다가 결국 낙지육회탕탕이로 입맛을 돋운 뒤 배는 중깐으로 채우겠다는 아름다운 결론에 이르렀다. 참고로 두 메뉴 모두 만족스러웠는데, 그중에서도 70년 전통의 노포에서 내놓은 중깐은 정말이지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쌀국수처럼 얇게 뽑은 면에 다진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 짜장 소스, 노른자가 살짝 덜 익은 달걀 프라이까지 모든 요소가 딱 알맞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아니, 이걸 안 먹고 돌아갔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역시 목포에서 삼시 세끼만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갓바위 말고 목포문학관 보러가기

 


<2019년 10월호>


류현경(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목포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