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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STIC - DOMESTIC TRAVEL
목포 원도심 레트로 여행

신新 목포유랑①

 

목포근대역사관

과거 목포일본영사관으로 건축된 목포근대역사관 본관.

 

목포근대역사관

목포근대역사관 2관의 전시 공간.

 

‘목포 유랑’ 스탬프 투어

‘목포 유랑’ 스탬프 투어도 여행객 사이에서 인기다.

 

평화의 소녀상

목포근대역사관 본관 앞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

 

 

문화관광해설사와의 만남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 앞에서 이뤄졌다. 널찍널찍한 도로마다 카페와 상점들이 빼곡히 도열한, 한눈에도 복고적 감성이 짙은 원도심 한복판이었다. “일대가 전부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돼 있어요. 대한제국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목포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공간이죠. 특히 이곳 번화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의 핵심 동네라 일본식 적산가옥과 상가주택이 여럿 남아 있어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목포근대역사관도 1920년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지점으로 세운 건물이고요.”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시작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은 한동안 막힘이 없었다. 그가 왜 이곳에서 여정을 시작하고자 제안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풍경 아래 감춰진 막연한 불편함에 대해서도. 목포의 원도심,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 상업의 중심지였던 번화로. 오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밴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시의 가장 번영했던 시절로 거슬러 오르는 통로였다.


실제로 조선 말기만 해도 무안현에 딸린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목포는 1897년 개항 이후 식민지 거점 도시로 이용되며 무섭게 성장했다. 호남의 미곡과 면화가 목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의 가공품 역시 목포를 통해 내륙으로 운반됐다. 그 집요한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공간이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다. “일본이 한국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예요. 1999년 이후 폐허처럼 방치돼 있던 건물을 개보수해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시켰죠. 한때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으로서 그 역사성과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요.”

 

개항 이후 목포의 역사, 주요 지역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무수한 사진들을 감상한 뒤, 역사관을 나와 본격적인 거리 산책에 나섰다. 물기 가득한 햇살 아래, 세월을 잔뜩 머금은 가옥과 상가주택이 저마다 문구점이며 식당, 카페, 갤러리 등으로 변모해 있었다. 1897 개항문화거리의 명소인 빈집 갤러리 ‘사슴수퍼마켙’을 구경하고, 며칠 전 문을 열었다는 카페 ‘목포 1897’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이켠 뒤 드디어 목포 다크 투어리즘의 하이라이트 코스로 향했다.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줄기 아래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르네상스양식의 우아한 벽돌 건물.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며 최근 여행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이곳은 과거 목포일본영사관으로 쓰인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이다. 금방이라도 드레스 차림의 아이유가 나타날 것 같은 동화적 외관, 총 7개 주제로 구분된 전시물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시선을 끈 건 건물 앞에 홀로 앉은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가녀린 소녀의 깊은 눈매, 주먹을 꼭 움켜쥔 두 손이 난폭했던 침략자들의 흔적 위로 묵직한 여운을 채우고 있었다.

 

 

삼거리 인근 골목길

삼거리 인근 골목길. 밤이면 조명 장식이 화려하게 빛난다.

 

갈치찜

목포의 별미로 꼽히는 갈치찜.

 

원도심의 빈집 갤러리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인 원도심의 빈집 갤러리.

 

1897 개항문화거리 산책은 목포역 방향으로 계속됐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번화가였던 해안로에 접어들자 풍경이 한층 고즈넉해졌다. 드문드문 일본인 상가주택이 옛 모습을 지키고 있을 뿐, 얼핏 봐서는 흔한 항구도시의 원도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쯤 색이 빠진 건물과 오래된 서체의 간판들, 명절을 앞둔 탓인지 인파가 드문 거리는 낯선 이방인의 여정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1920년대 조선인 모자 장인이 운영한 ‘갑자옥 모자점’이나 일제강점기의 화물 창고였던 ‘붉은 벽돌창고’ 사이 사이, 역시나 멋스러운 카페와 공방이 자주 눈에 띄었다. 산책의 마지막 거점은 오거리. 과거 일본인 거주지와 조선인 거주지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크고 작은 분란이 끊이지 않던 장소다. 물론 그 피해자는 대부분 조선인이었을 터. 사연 많고 곡절 많은 옛 번화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분노의 역사든 굴욕의 역사든 잊지 않고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건 내가 이 시국에 굳이 목포를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오후 6시경,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초원음식점’의 갈치찜을 맛본 뒤 항구도시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지인에게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목포 최고의 일몰 포인트는 유달유원지 남쪽의 신안비치호텔 앞. 아니나 다를까, 이내 목포대교와 해상케이블카가 맞닿은 탁 트인 바다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빠르게 시야를 물들이는 어둠 너머, 목포대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던 케이블카도 저마다 빛을 밝히고 나섰다. 안개에 가려 일몰이 보이지 않던 그날, 목포의 밤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왔다.

 

 

근대 조선인의 터전, 옥단이길을 걷다 보러가기

 


<2019년 10월호>


류현경(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목포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