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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아시아
타이베이의 과거와 현재

타이완 도시 열전 - 타이베이②

 

단수이강은 타이베이시를 가로질러 흐른다. 대부분 택시를 타고 “타이베이 이링이(타이베이 101타워)!”라고 외치는 것이 타이베이 관광의 시작이다. 혹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올드 타운을 만나고 싶다면 수도의 서쪽, 다다오청大稻埕이 안성맞춤이다. 테마파크처럼 아기자기한 동네 구경을 생각한 사람이라면, 세련됨이 비껴간 거리 풍경에 잠시 멈칫할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다다오청 부두를 찾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쇠락한 옛 항구만이 보일 테니까. 다다오청은 원래 곡식 건조 장소로 쓰인 곳으로 이 이름이 지명으로 굳어졌는데 1850년 청나라 말기에 개항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걸쳐 무역이 발달한 이 항구는 타이완의 경제적, 문화적 젖줄이라고 할 수 있다. 도로를 건너 도착한 부두에는 크고 작은 배와 화려한 상점가, 그리고 상인들의 활약이 벽화로 남아 있어 과거의 영화와 번영을 말해준다.

 

다다오청 부두

과거의 영화를 짐작케 하는 다다오청 부두의 벽화.

 

MRT 베이먼역에서 시작되는 다다오청 디화제는 유명한 상점가다. 바로크식 건물과 붉은 벽돌의 푸젠성 스타일 건축물이 어우러진 낭만적인 풍경이 다다오청의 150년 역사를 그대로 전한다. 시간이 무색하게 현재도 식료품과 생활 잡화는 물론 야드 단위로 끊어 파는 옷감, 근으로 달아 파는 어란, 꽃차, 말린 망고 등이 여전히 인기 품목이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건물에 모두 외부 가림막을 설치했다. 덕분에 우천에도 통행과 쇼핑에 지장이 없어서 다다오청 디화제 투어는 날씨에 구애되지 않는다.

 

상인뿐만 아니라 시장에 온 사람들은 모두 습관처럼 사당인 샤하이청황먀오를 찾는다. 다다오청을 지켜온 아담한 사당에는 수호신인 성황신, 관세음보살 그리고 부부의 연을 관장하는 월하노인을 모신 3개의 신단이 있다. 이 사원의 월하노인이 인연을 점지하는 영험함이 뛰어나기로 특히 소문나서 청춘남녀는 물론 비즈니스 파트너를 물색 중인 사람들로 북적인다. 떡이나 초, 쌀 등의 제물은 별도로 구매해야 하지만 향은 누구나 3개까지 무료로 피울 수 있어 갈 길이 바쁜 관광객도 꼭 체험해본다. 입구의 향을 피워 방마다 돌면서 자신의 소원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빈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와 길가에 있는 거대한 향로에 들고 있던 향을 꽂으면 된다.

 

커피숍 프레이시

커피숍 프레이시의 시그니처 음료.

 

구르는 돌에도 역사가 스민 듯 유구한 골목에도 핫한 커피숍이 눈에 띈다. 사당 건너편 건물 2층에 자리한 플라이시Fleish는 치파오를 입은 직원들이 서빙하는 독특한 콘셉트의 커피숍으로 시장 투어로 지친 발을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이 골목에서 꼭 커피숍을 열고 싶었지만 오랜 세월 몇 대에 걸쳐 장사해온 상인들의 텃세가 심해서 몇 년을 맴돌다 겨우 최근 오픈하게 되었다는 청년 사장의 창업 무용담도 흥미롭다. 차의 본산지에서 맛본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의 맛은 수준급이었다. 차가운 탄산음료와 에스프레소를 믹스한 시그니처 음료도 인기.

 

신팡춘 차 박물관

신팡춘 차 박물관의 기념품점.

 

다다오청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장소는 신팡춘 차 박물관. 1934년에 지어진 3층 건물로 타이베이 최대의 차 제조 공장이었는데 지금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치파오를 입은 해설사가 나타나 “신팡춘차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며 웰컴 티를 건넨다. 100여 년 전에 동업자의 이름을 각각 한 자씩 따서 팡과 춘이라 이름 지은 차 점포는 엄청나게 번성했다. 1층 신관에서 중정을 지나 구관으로 들어가니 해설사가 “이곳은 보존을 위해 에어컨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웃는다. 삐걱 소리와 함께 문을 여니 100년 전으로 순간 이동을 한 듯 차를 덖는 아궁이와 솥, 그리고 궤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안전 문제로 한 명씩 차례로 통행해야 하는 나무 계단을 이용해 2층에 올라가 창업자가 태평양을 넘나들며 차 무역을 하는 데 사용했다는 대형 트렁크, 거래 장부, 광고 입간판, 그리고 당시 차를 서빙하던 직원들의 의상을 보고 있노라니 비장한 마음마저 든다. 바퀴조차 달리지 않은 구형 트렁크는 전 세계를 돌며 얼마나 많은 모험을 했을지, 그저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라질 것 같다. 트렁크 손잡이 옆 회사 이름과 창립자의 이름을 영어로 새긴 잉크 자국은 지금도 또렷하다. 대문이며 간판까지 이 건물의 모든 것이 100년이 넘었지만 창문만은 역사가 짧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다. 타이완 프로야구 선수로 유명한 창업자의 아들이 어렸을 적 공놀이를 하다 유리창 대부분을 깨뜨렸다는 얘기에 다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해설사가 갑자기 장갑을 낀다. 족히 100년 가까이 된 나무 상자를 열고 그 안의 유산지를 조심스럽게 펴서 내용물을 보여준다. 금덩이처럼 소중하게 보관된 그것은 여행용 비누만 한 크기로 포장된 차 꾸러미였다.

 

신팡춘 차 박물관의 차꾸러미 유물

신팡춘 차 박물관의 차꾸러미 유물

 

신팡춘 차 박물관의 역사와 유물을 설명하는 직원

신팡춘 차 박물관의 역사와 유물을 설명하는 직원


“당시 서민에게 찻값은 금값이었기에 근 단위로 사는 것은 무리였지요. 덕분에 이런 소분 상품이 유행하게 되었답니다. 족히 70년은 된 상품입니다.” 차 박물관에서는 신청자에 한해 2층 티 룸에서 차를 시음할 수 있다.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1인당 150타이완 달러다. 오늘의 주인공은 우롱차보다 발효 정도가 약한 바오중차. 간단한 설명과 함께 찻주전자에 우려 한 잔씩 서빙되는 차의 풍미에 다들 경건해진다. 차 전문가들은 바오중차를 일컬어 “꽃에서 나는 향 외에 이런 향을 낼 수 있는 존재는 없다”며 극찬을 했다고.  2층 건너편은 카페와 기념품점이다. 

 

야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후추빵 노점

야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후추빵 노점


도시의 밤이 시작되었다. 타이베이에서 밤과 미식을 동시에 만끽할 장소로 야시장만큼 적합한 곳이 없다. 타이베이 야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스린 야시장과 랴오허 야시장을 들 수 있는데, 현지인들은 주저 없이 후자를 꼽는다. MRT 송산역 1번 출구에서 2분 거리인 랴오허 야시장은 스린 야시장에 비하면 규모는 절반 정도지만 접근성이 뛰어나고 동선이 복잡하지 않아 짧은 시간에 야시장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250년 전통의 도교 사원인 츠유궁 바로 옆이기 때문에 사원 방문객도 들르는 군것질 필수 코스. 랴오허 야시장 최고의 명물은 입구에 있는 후자오빙 노점이다. 후추빵을 뜻하는 후자오빙은 대파와 후추로 양념한 소를 반죽에 넣어 화덕에 구운, 만두와 찐빵 사이의 음식이다.

 

랴오허 야시장의 반찬가게

랴오허 야시장의 반찬가게

 

야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타이베이의 다양한 길거리 미식 투어가 시작된다. 전복, 조갯살, 어묵, 오징어를 양념해서 구운 꼬치구잇집을 시작으로 닭발과 꼴뚜기, 새우 등을 조리해서 파는 반찬가게를 지났다. 안쪽 노천 식당에는 가족 전체가 출동해서 국수와 고기볶음 등으로 저녁 또는 야식을 즐기는 광경이 눈에 띈다. 제대로 된 점포보다는 노점상이 많아 작업 환경은 열악하지만 거의 모든 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은 치열함이다. 음식은 만들기 바쁘게 팔려나가고 순식간에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더운 날씨에도 손이 늦어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주인도 없고, 먹어보고 불평하는 손님도 없을 만큼 만족도가 높으니 시장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진다. 후추빵 노점 옆이라 덩달아 대박난 곳이 있다. 딸기, 파인애플, 키위 등에 설탕시럽을 입힌 디저트 탕후루를 파는 노점이다. 시장 입구 드러그스토어는 티백 밀크티와 타이완 명물 곰돌이 방향제를 마트보다 싸게 파는 곳으로 이름났다. 여기서 쇼핑을 끝낸 사람들은 펑리수와 누가 크래커를 다양하게 판매한다는 맞은편 과자점으로 이동한다. 배가 부르고 두 손이 그득하면 시장 투어는 어느덧 끝이 난다. 비교적 단조로운 시장의 동선은 일직선으로 버스 정류장 절반 정도다. 시장 영업시간은 자정까지이고 보통 오후 9~10시 무렵이 피크 타임이다. 오후 11시쯤이면 썰물처럼 인파가 빠져나가고 북적이던 시장이 한산해진다. 시장을 나올 때쯤이면 이 도시의 습도와 열기에 익숙해져 있다. 왠지 현지인에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2019년 9월호>


글·사진 이화정(프리랜서)
취재 협조 타이완관광청 www.putongtaiwa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