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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유럽
케른텐 산악 마을 호수 유람

케른텐 로맨틱 홀리데이②

 

산악 마을 호수 유람

 

케른텐에 오기 전, SNS 피드나 오스트리아관광청에서 발행한 브로슈어 속 케른텐의 사진은 연출임이 분명하다고 단정했었다. 사진 속에서 호수는 티없이 맑고, 주변은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며, 산맥과 초원은 인간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다. 케른텐을 여행하며 놀란 건 사진에 등장한 모든 요소가 전혀 연출된 게 아니란 점이다.

 

신록의 계절, 케른텐을 방문한 이방인은 200여 개의 에메랄드빛 호수를 눈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심 끝에 이틀간 3곳을 방문했다. 첫 번째 호수는 밀슈타트Millstätter. 길이 11.5킬로미터, 너비 1.8킬로미터에 달하는, 케른텐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숫가 근처를 맴돌다 아무래도 높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 산을 올랐다. 마침 가방에는 물병이 있었고, 튼튼한 트레킹화도 신은 상태였다. 밀슈타트의 대표 전망대인 발코니 오브 스타스Balcony of Stars 근처에서 시작하는 슬로 트레일 미르노크Slow Trail Mirnock 하이킹 코스는 2.6킬로미터가량 이어져 있다. 울창한 숲이 만든 그늘과 뜨거운 햇살로 이글대는 양지를 번갈아 걷는 데는 넉넉잡아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여름보다는 봄이나 가을, 한낮보다는 바람이 불거나 석양이 질 때쯤 오는 것이 좋겠지만, 언제라도 미르노크산의 다정한 들판, 밀슈타트 호수의 우아한 물결은 걷는 내내 쉴 새 없이 눈앞에 어른거릴 것이다.

 

산악 마을 호수 유람

호숫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가족.

 

호텔 카르너호프의 레스토랑

호텔 카르너호프의 레스토랑은 환상적인 전망을 자랑한다. 매일 아침과 저녁 파커 호수를 바라보며 수준 높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하이킹 이후 파커Faaker 호수 주변의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이 바로 두 번째 호수다. 카르너호프 호텔의 최대 장점은 호텔에서 호수로 곧장 이어진다는 것이다. 케른텐에서의 첫날 저녁, 호박씨 오일을 듬뿍 뿌린 샐러드와 생선 요리를 빠르게 해치우고는 객실로 달려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호숫가로 직행해 잔잔한 물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수온은 밤새도록 수영하고 싶을 만큼 완벽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반딧불이의 희미한 빛이 선명해질 때까지 오직 호수를 떠다니는 일에만 집중했다.

 

과일 향을 첨가한 맥주 '라들러'

마리아 뵈르트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마신 라들러. 과일 향을 첨가한 맥주다.

 

피라미덴코겔에 올라 내려다 본 '뵈르트 호수'

피라미덴코겔에 오르면 뵈르트 호수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내려올 때는 슬라이드를 이용해볼 것. 보기보다 스릴이 넘친다. 

 

사실 케른텐에서는 수영만큼이나 배를 타고 호수를 즐기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리하여 세 번째 호수인 뵈르트Wörth에서는 유람선을 탔다. 출발지점인 펠덴Velden에서 마리아 뵈르트Maria Wörth 정류장으로 향하는 1시간을 무위로 보내는 동안, 호수를 배로 유람하는 것처럼 나른하고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함께 배를 탄 사람 중 반 이상은 마리아 뵈르트에서 내렸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각자 골목으로 사라졌고, 나처럼 카메라를 든 여행자는 언덕 위에 자리한 피라미덴코겔Pyramidenkogel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전망탑인 피라미덴코겔에 가면 마리아 뵈르트 지구와 뵈르트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3개의 전망대 플랫폼을 차근차근 올라가며 몇 번을 다시 봤지만, 여전히 터키 블루 컬러의 호수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1877년 여름, 뵈르트 근처 푀르트샤흐에서 머무르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당시 풍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호수, 숲, 저 멀리 둥글게 솟아 있는 산들, 하얗게 반짝이는 깨끗한 눈. 이곳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러니 뵈르트 호수 위로 흐르는 부드러운 감성을 이야기하기에는 몇 마디 문장보다 브람스나 구스타프 말러가 뵈르트 호수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명곡들을 듣는 편이 훨씬 낫다.
뵈르트 호수 아래쪽 산맥을 넘으면 곧장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에 닿는다. “이탈리아에서 점심을 먹고 슬로베니아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와도 오후 5시예요.” 현지인들은 늘 이곳의 탁월한 접근성을 이방인에게 설파하려 한다. 이탈리아 국경까지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케른텐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좋은 곳임이 분명하다. 다만 내게 케른텐에서 일주일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모험을 떠날 기회를 기꺼이 포기하고서라도 호수를 유람할 생각이다. 점 찍듯 바쁘게 다녀야 할 것 같은 관광지 대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선한 공기와 호수의 여백이 케른텐에서의 하루를 가득 채웠다. 한갓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낙원. 케른텐을 여행한 이후 나는 여름철 북적이는 해안가와 해변 리조트에 대한 대안으로 호수보다 더 완벽한 곳을 떠올릴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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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호>


에디터 김수현
사진 김병준(프리랜서)
취재 협조 오스트리아관광청 한국사무소, 터키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