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ESTINATIONS - 유럽
극동 러시아의 도시 생활

거친 여정일수록 베이스캠프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는 법. 여행자의 휴식처이자 또 다른 놀이터가 되어줄 캄차카의 두 도시를 소개한다.

 

캄차카
캄차카

제2차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광장에는 당시 영웅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자리한다.

 

캄차카

활기로 가득 찬 중앙 시장 입구.

 

여행자의 관문, 옐리조보
어떤 여행지든 첫인상을 좌우하는 건 대개 비행기에서 내린 직후의 풍경일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맞닥뜨린 공기, 처음 대화를 나누고 선의를 주고받은 사람들,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 쌓여 여행의 첫 페이지를 채운다. 그런 의미에서 옐리조보는 캄차카 여행객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도시다. 일단 캄차카는 대륙과 맞닿은 육로가 없어 옐리조보 공항을 거치지 않고는 아예 발조차 디딜 수 없으니까. 거주민이 4만 명을 채 넘지 않는 아담한 소도시지만(비교하자면 강남구 대치2동 인구가 약 4만 명이다) 옐리조보의 거리가 활기로 가득한 건 그 때문이다. 물론 공항 근처는 사실상 허허벌판에 가깝고, 제대로 도시 구경을 하려면 시내로 들어서야 한다. 보통 여행의 시작 혹은 끄트머리에 옐리조보 시내 투어를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관광 포인트가 서로 밀집해 있어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볼 만하다. 우선 첫 번째 목적지는 레닌 동상. 러시아 어느 도시를 가든 레닌 동상부터 찾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여행자 입장에선 동상 자체가 중요해서라기보다 동상을 세운 포인트가 보통 그 도시의 중심부이기 때문이다. 옐리조보 역시 마찬가지다. 레닌 동상이 자리한 공항 북서쪽, 아바차강 너머의 시가지를 찬찬히 산책하다 보면 제2차세계대전 추모비와 ‘아이 러브 캄차카Ялюблю Камчатку’ 조형물, 정교회 성당, 지역 역사박물관 등 도시의 주요 볼거리를 차례로 마주하게 된다. 그중 여행객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장소가 인증샷 명소로 알려진 ‘아이 러브 캄차카’ 조형물. 미학적으로 뛰어나거나 대단히 의미 깊진 않아도 흰색과 붉은색으로 마감한 조형물이 푸른 수목, 호젓한 주택가와 어우러진 풍경은 나름의 운치를 자아낸다. 주변이 공원 형태로 조성돼 있어 산책 중 잠시 쉬어가기도 좋다. 조형물 양옆으론 성격이 전혀 다른 기념비가 서 있는데, 하나는 스탈린 시절 정치적으로 억압받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 다른 하나는 초기 캄차카의 발전에 공헌한 현지인들을 기리는 공적비다. 사실 옐리조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장소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 시장이다. 과거 재래시장을 레노베이션한 넓은 건물 안팎으로 육류와 해산물, 채소, 과일, 꿀, 유제품을 비롯한 각종 식재료는 물론 신발, 옷, 생활잡화까지 다양한 생필품이 가득 들어차 있다. 한국 라면이 즐비한 아시안 식료품점도 있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카페나 베이커리도 곳곳에 숨어 있다. 물론 여행자들의 하이라이트 코스는 건물 한쪽에 널찍하게 자리한 수산물 코너. 훈제 연어나 연어알, 킹 크래브 등 현지 특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특히 출국 전 이곳을 들르는 여행객이 무척 많다고. 중앙 시장은 옐리조보 버스터미널과도 가까운데, 터미널 2층의 관광안내소를 찾으면 일대 하이킹 코스를 안내하거나 전문 가이드 혹은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와 접해 있고, 파라툰카 온천지대와도 멀지 않아 아예 이곳에 여장을 푸는 여행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스키 리조트인 모로즈나야 고라Moroznaya Gora, 수려한 호숫가 경관으로 이름 높은 블루 레이크 자연공원Blue Lakes Nature Park 역시 옐리조보의 대표적 근교 여행지. 참고로 그 유명한 불곰 기념 동상은 공항에서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로 가는 길에 살짝 들르면 된다.

 

 

캄차카

쿨투츠노예 호숫가에서 만난 현지 소년들. 양쪽 두 명은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단다.

 

캄차카

옛 항구거리 곳곳에 아기자기한 풍경이 숨어 있다.

 

반도 최대의 도시,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
옐리조보가 여행자의 관문이라면,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는 최대의 베이스캠프다. 캄차카주의 주도이자 극동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이곳엔 반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18만 명이 모여 산다.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롭스크 같은 인근 대도시와 비교하면 한참 소박하지만, 어쨌든 이 불모의 땅에서 유난히 사람 냄새 나는 지역인 셈이다. 실제로 18세기 비투스 베링의 2차 탐험대가 아바차만 안쪽에 항구를 건설한 이후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는 극동 해양 교통의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했다. 20세기부터 본격적인 자원 개발이 시작된 한편,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러시아 극동함대의 주요 군항으로 부상하며 인구도 급격히 불어났다. 구소련의 붕괴 뒤엔 잠시 내리막길을 걷기도 했으나 풍부한 수산자원과 해저광물, 무엇보다 천혜의 관광자원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덕분에 오늘날 가장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도시가 됐다. 그 곡절 많은 역사를 가장 세심히 보존한 지역이 바로 캄차카 향토박물관에서 쿨투츠노예 호수Kultuchnoye Ozero까지 이어진 옛 항구거리다. 캄차카는 기후가 험악해 건축물이 오랜 시간을 버티기 힘든데, 이 거리의 건물들만큼은 대부분 처음 지어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많은 여행객이 도시의 첫 목적지로 옛 항구거리를 택하는 건 그래서다. 우선 언덕 위 향토박물관에 들러 캄차카반도의 역사와 문화, 동식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박물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고고학, 민속지학, 역사, 문화, 자연에 이르기까지 총 120점이 넘는 전시물을 갖춰, 본격적인 탐험 전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다양하다. 박물관을 나온 뒤 이어지는 건 느긋한 산책의 시간. 이때부터 무수한 동상, 기념비들을 수시로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 상당수가 베링은 물론 영국 해군 장교인 찰스 클러크, 프랑스 해군 장교인 장프랑수아 드 갈로 라페루즈 등 캄차카에 발을 디딘 옛 탐험가를 기리는 것들. ‘탐험’이란 단어가 이 땅의 정체성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항구거리 끝자락에는 ‘이곳이 시내 중심부임을 알리는’ 레닌 광장이 자리한다. 옐리조보와 마찬가지로 레닌 동상이 선 자리를 따라 각종 문화 시설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있고, 그 너머엔 쿨투츠노예 호수와 아바차만 해변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날씨만 좋다면 종일 그 앞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수려한 풍광, 더불어 현지인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의 명소는 옐리조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여기까지가 필수 코스고 나머지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일정, 동선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쿠릴열도 해방비나 전쟁 추모 기념비 같은 역사적 이정표를 좇아도 좋고, 성삼위일체 성당이나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에서 러시아정교회 특유의 미학을 탐색해도 좋다. 물론 러시아 최대의 어업도시까지 왔으니 재래시장과 수산시장을 돌며 각종 해산물을 맛보고 구매하는 것도 바람직한 여행자의 자세. 만약 좀 더 높은 지대에 올라 도시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면 중심가를 둘러싼 3개의 전망대를 추가로 권한다. 아바차만 남쪽 해변의 니콜스카야 언덕과 북쪽 해변의 미셴나야 언덕Mishennaya Sopka 그리고 도심 안쪽의 페트롭스카야 언덕Petrovskaya Sopka이 그것이다.

 


<2019년 7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하나투어 www.hanatour.com 프라이드통상, 바이칼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