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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유럽
캄차카 탐험 안내서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가까운 러시아 동쪽 끝의 반도, 캄차카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를 정리했다.

 

캄차카
캄차카

# 오래된 원주민의 땅
17세기 이전까지 캄차카는 아시아 동북부를 아우르는 여러 소수민족의 땅이었다. 대표적 토착민으로 꼽히는 코랴크와 이텔멘, 추크치, 에벤 외에도 홋카이도 원주민으로 유명한 아이누, 원시 에스키모 공동체의 일원인 알류트 등 다양한 민족이 반도 곳곳에 흩어져 살았다. 야생의 땅을 개간해 거대 문명을 이룩한 건 아니었지만, 대개 순록을 유목하고 사냥 및 어업 문화를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살던 민족들이다. 다만 18세기 이후 많은 이들이 전쟁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러시아 문화에 동화됐고, 오늘날 캄차카 원주민의 비율은 고작 3퍼센트에 불과하다. 주도인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의 근교 민속마을 카이늬란Kaynyran에 방문하면 현재 캄차카 원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코랴크인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오호츠크 해안을 따라 고대 코랴크 문화를 형성했던 이들은 사냥과 유목 생활을 발전시키며 점차 캄차카반도 깊숙이 이동했는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주로 북부 산악지대에서 순록을 키우며 살았다. 안타까운 건 그들 고유의 언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 196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코랴크인이 모국어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수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다행히 카이늬란에는 코랴크의 전통을 지키는 이들이 남아 여행객을 반긴다. 주로 화산과 바다, 일대 야생동물에서 영감을 얻은 그들의 춤과 노래는 캄차카의 자연과 그대로 닮아 있다.

 

 

캄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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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지 탐험의 역사
캄차카반도의 역사는 사실상 무수한 추측과 전설로 둘러싸여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가 거주해온 땅이지만, 러시아에 편입되기 전까진 기록으로 남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 실제 캄차카란 이름이 세계 역사에 등장한 건 17세기 대항해시대의 격류와 맞닿아 있다. 서유럽의 강대국들이 너도나도 신대륙 개척에 나설 무렵, 표트르대제가 이끄는 러시아는 시베리아 너머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여러 탐험가가 목숨을 건 극동 탐사를 자청했고, 결국 캄차카는 러시아에 합병됐다. 정착지로서 좀 더 본격적인 출발점은 덴마크 출신 탐험가 비투스 베링Vitus Bering이 등장하는 18세기부터다. 그는 두 차례의 해역 탐사를 통해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이 바다(이후 베링해협으로 명명됐다)로 끊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해협 너머 알래스카 땅을 발견했으며, 무엇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캄차카반도 귀퉁이에 도시의 초석을 쌓았다. 극동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페트로파블롭스크(‘Peter & Paul’이란 의미다)캄차츠키는 이때 베링 일행이 타고 온 2척의 배, 즉 세인트 피터St. Peter호와 세인트 폴St. Paul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도시의 역사가 곧 극지 탐험의 역사인 만큼 오늘날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에는 여러 탐험가를 기리는 동상과 기념비가 곳곳에 서 있다. 물론 그중 가장 유명한 기념비는 해양항만청 가까이의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베링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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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전의 흔적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여행객이 캄차카반도에 발을 딛는 일은 불가능했다. 러시아의 군사 요충지로서 동부전략사령부 관할이었던 이 땅은 1991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외부인은 물론 내부인의 접근조차 어려웠다. 지리적으로 대륙의 마지막 방어선일뿐더러 미국령인 알류샨열도나 알래스카와도 접해 있으니, 냉전시대 동부 러시아군이 캄차카에 병력을 집중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특히 공군기지와 핵잠수함 및 미사일 기지, 통신시설 등의 핵전력이 유난히 밀집했다고. 캄차카인들이 참여한 전투 중 지금까지 가장 뜨겁게 회자되는 건 19세기 유럽 전역을 뒤흔든 크림전쟁Krymskaya Voina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흑해를 놓고 오스만제국,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왕국 연합군과 벌인 전쟁의 불똥이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까지 튄 것인데, 이때 영프 연합군과 싸운 흔적이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 곳곳에 남아 있다(크림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지만 캄차카에서 치른 전투만큼은 군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 도심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니콜스카야 언덕Nikolskaya Sopka에 오르면 당시 군인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전투의 승리를 기리는 무수한 기념비, 바다를 향해 위풍당당 도열한 주철 대포 등을 마주할 수 있다.

 

 

캄차카

# 사계절 온천 명소
하늘에서 캄차카를 내려다보면 셀 수 없이 많은 화산이 반도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중 29개가 용암과 마그마로 가득 찬 활화산. 시베리아 최고봉인 해발 4750미터의 클류쳅스카야Klyuchevskaya부터 지난 250년간 14차례나 용암을 분출한 아바친스키까지, 차가운 극지를 뒤덮는 활화산의 숨은 여전히 뜨겁다. 캄차카가 ‘불의 땅’이라 불리는 건 이 때문이다. 화산활동이 활발한 지역답게 곳곳에 노천 온천이 발달했는데,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곳은 옐리조보 공항과 가까운 파라툰카 온천지대. 이 일대의 호텔이라면 아무리 규모가 협소해도 온천 수영장 하나쯤은 갖고 있는 게 보통이란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노천 온천으로는 카이늬란 민속마을 인근의 젤레놉스키 오제르키Zelenovskiye Ozerki를 꼽는다. 시골 목욕탕 같은 외관에 탕의 규모도 그리 대단치 않지만, 온천수에 수소 이온과 미네랄의 함량이 높고 라돈 및 황화수소 성분도 다량 함유돼 있어 치료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온천탕 옆 쪽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아담한 호숫가가 나타난다. 한여름에도 5도를 넘지 않는 이 천연 냉탕 역시 젤레놉스키 오제르키의 자랑. 그러니 차가운 호숫물과 뜨끈한 온천물에 번갈아 몸을 담그며 캄차카 노천 온천욕의 묘미를 만끽해보자.

 

 

캄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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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해공 액티비티 성지
캄차카는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사계절 액티비티의 천국이다. 많은 이들이 여름이면 협곡 래프팅을 즐기고, 겨울부터 봄까지 스키와 스노보드에 매진한다. 낚시와 서핑, 트레킹처럼 계절과 무관한 액티비티도 적지 않다. 물론 일정이 제한적이니 우선순위는 있다. 여행객들이 꼽는 캄차카 여행의 필수 액티비티 코스는 화산 트레킹과 보트 투어. 특수 개조한 오프로드용 차량을 타고 전문 산악 가이드와 함께 설산을 누비거나 보트를 타고 바다 위를 유영하며 선상 낚시를 즐기다 보면 캄차카의 순수한 자연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 여정의 백미는 헬리콥터 투어다. 사실 캄차카는 외부 세계로부터만 고립된 것이 아니라 반도 내에서의 움직임 역시 철저히 제한적이다. 도로가 불안정해 차량이 통제되거나 헬기 혹은 경비행기를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지역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헬기를 타고 반도 최남단의 쿠릴 호수로 향하다 보면, 왜 이 땅에 도로가 부족한지 이해하게 된다. 화산 너머 화산, 그 너머 또 화산, 온통 화산지대로 둘러싸인 반도는 거칠게 휘어지고 갈라지며 만년설과 뒤엉켜 있다. 그 아득한 불모의 땅을 뒤덮은 원시 비경, 지구의 맨 안쪽에 들어선 듯 아찔한 고립감 앞에선 누구나 대자연의 기세에 압도당하고 만다. 꼭 쿠릴 호숫가에 모여든 연어와 불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여행객들에게 굳이 헬기 투어를 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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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동물의 낙원
한반도보다 넓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캄차카의 인구는 고작 32만 명. 게다가 그 절반 이상이 주도인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에 모여 산다.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 지형인 데다 도로도 제대로 닦여 있지 않고, 섬은 아닌데 러시아의 다른 극동 지역과 육로로 연결돼 있지도 않다(러시아 전체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도 닿을 수 없는 지역이다). 캄차카가 태초의 자연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구상 어딜 가든 인구가 희박한 대자연의 영역에는 야생동물이 들끓는 법. 캄차카 역시 마찬가지다. 툰드라와 습지로 둘러싸인 광범위한 기후 조건은 풍요로운 생명을 잉태했고, 여름마다 연어 떼가 회귀하는 하천과 호수는 캄차카를 세계 최대의 야생 곰 서식지로 만들었다. 실제로 오늘날 캄차카를 상징하는 야생동물은 단연 불곰. 여행자들의 관문인 옐리조보 공항 근처에 “여기서부터 러시아가 시작됩니다”라고 적힌 실물 크기의 불곰 동상이 서 있을 정도다. 물론 불곰 외에도 이 땅의 주인은 다양하다. 툰드라늑대와 북극여우, 시베리안 스라소니 같은 희귀종부터 검은담비, 유라시아수달 등의 족제비과, 레밍이나 다람쥐, 마멋 등의 작은 설치류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이 자유로이 반도를 누빈다. 덕분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매력이 가득하지만, 그만큼 여행객들의 주의도 필수적이다. 특히 연어가 돌아오는 7월부터는 언제 어디서든 불곰과 마주칠 수 있으니 늘 안전수칙에 유의해야 한다.

 


<2019년 7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하나투어 www.hanatour.com 프라이드통상, 바이칼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