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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STIC - DOMESTIC TRAVEL
지족을 만드는 사람들

바닷길 따라 남해 일주①

 

남해

지족해협에 들어선 죽방렴.

 

창선도를 지나 남해도의 끝자락인 지족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났다. 이곳이 고향이라던 그녀는 골목에 취약한 내비게이션보다 정확하게 첫 번째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바람에 실린 갯내가 먼저 코를 깨운다. 죽방렴이 있는 지족해협에 다다른 것이다. 죽방렴은 남해의 전통 어업 방식이다. 예종 원년에 편찬한 <경상도 속찬지리지>에는 남해의 죽방렴에 관한 내용이 남아 있는데, 이때가 1469년.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500년 이상 같은 방식으로 어업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전통과 가치를 인정받은 죽방렴은 올해 초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중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죽방이 있다 하여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통 안의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것을 보며 그 원리가 궁금해졌다. “좁은 바다 물목에 그물 대신 참나무 지지대를 ‘V’자로 세워 원형의 통을 만들고, 이를 대나무로 엮은 뒤 다시 발을 세워요. 물고기는 밀물을 따라 통 안으로 몰려들어요. 썰물 때 통의 문이 자연스레 닫히면 어부가 통 안에 들어가 물고기들을 바가지나 뜰채로 거두는데, 이 물고기 중 한 종류가 바로 멸치랍니다.” 죽방에서 잡은 멸치는 그물을 털 필요가 없어 비늘에 손상이 없고, 곧바로 이어진 막에서 삶아 신선도가 높다. 맛이 좋고 값도 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소량의 천일염까지 들어간 최고급 ‘죽방멸치’의 한 박스 가격은 수십만원대를 호가한단다. 기력이 떨어질 때마다 보약 삼아 하나씩 먹었다는 동료의 경험담과, “백화점 식품관에 들어가는 선물용 상품”이라던 해설사의 말은 꽤 정확했다. 이만하면 여기저기 죽방을 만들어봄 직한데, 현재 남해에 있는 죽방은 23개에 불과하다. 일선에 있는 어부들은 나이가 지긋하고, 지족해협으로 들어오는 멸치 양은 눈에 띄게 줄어든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방식을 고수한다. 더 얻기 위해 욕심 내려 하지 않는다. “죽방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먹을 만큼만 잡겠다는 뜻이 아닐까요? 나갈 고기들은 나가게 내버려두는 것만 봐도 그렇죠.” 느리고 단순한 어부들의 삶. 촌각을 지체할 수 없는 삶에 익숙한 도시인은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해 지족구거리

지족구거리의 풍경. 얼핏 보면 영화 세트장 같다.

 

남해 지족구거리

지족구거리를 느리게 달리는 버스.

 

남해 대정돌창고

대정돌창고의 내부. 곡식 창고의 화려한 변신이다.

 

남해 대정돌창고

도자기 공방 겸 갤러리로 운영 중인 대정돌창고.

 

남해

노란 들꽃이 핀 남해의 초여름.

 

남해 독일마을 전망대

독일마을 전망대에 오르면 물건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죽방렴 근처에는 지족마을의 구거리가 있다. 과거에는 삼동면의 번화가였지만, 지금은 주말 여행객들이 독일마을로 향할 때나 조금 시끌시끌할 뿐, 육지와 섬을 잇는 연륙교가 생긴 이후로는 아예 오가는 차들이 뜸해졌다. 침묵한 거리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건 객지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부터 성수동이나 연남동 등지에 있을 법한 세련된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지족구의 번화기와 침체기를 함께한 옛 가게들까지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독립 서점인 ‘아마도 책방’, 소품 숍 ‘초록스토어’, 꽃 공방 ‘플로마리’ 등 젊은 여행객의 취향을 겨냥한 가게들은 작은 마을에서 자신만의 개성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족구거리와 더불어 시골에서 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노력으로 완성된 공간이 또 있다. 삼동면의 시문돌창고와 여기서 조금 떨어진 대정마을에 위치한 대정돌창고가 주인공이다. 각각 옛 비료 창고와 쌀 창고로 쓰인 공간인데, 오늘날 ‘돌창고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남해 사람들의 소중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시문의 돌창고가 카페를 갖춘 문화 예술 공간이라면, 지난해 문을 연 김영호, 이지은 부부의 공간인 대정돌창고는 도자기 공방과 소규모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내년이면 대정돌창고는 100주년을 맞이한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남해의 변화를 지켜온 건물인 만큼 그 자체로도 의미가 대단하지만, 대정마을의 따뜻한 풍경과 어우러진 외관, 빛을 담은 실내의 건축미 또한 뛰어나기에 꼭 한번 가볼 만하다.

 


<2019년 7월호>


에디터 김수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남해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