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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STIC - DOMESTIC TRAVEL
예산, 봄 햇살이 내리는 자리

봄꽃 따라 예산 옛 마을 산책③

 

예산

예산 원도심에는 추억이 담긴 벽화가 있다.

 

예산

예산시장 근처에는 자연 건조한 중면을 파는 국숫집이 몰려 있다.

 

수덕사에서 나오니 한나절이 훌쩍 지나버렸다. “예산엔 큰 장이 4곳 있는데, 오늘은 삽교장이 열리는 날이네요. 옛날에 우시장이 있던 곳으로 곱창과 소머리국밥이 유명해요.” 문화해설사는 2대째 이어지는 한일식당을 추천했다. SBS의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온 이후 찾는 사람이 많아져 규모를 키웠다고 한다. 시골 장터의 모습이 남아 있는 풍경 속에 이질감 없이 자리한 가게에는 점심시간도 되기 전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방송을 타기 전엔 넓은 테이블에 낯모르는 사람끼리 줄지어 앉아, 같은 뚝배기에 든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먹고 가끔은 막걸리도 한잔 얻어 마시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보통의 식당처럼 자리를 배치해 그 운치는 사라졌지만 국밥 그릇 가득 담아주는 머릿고기의 양과 시원한 빨간 국물은 그대로다. 마지막 한 숟갈까지 싹싹 긁어 먹곤 다음 목적지인 추사고택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푸른 잎을 맺기 시작한 사과나무 농장이 펼쳐졌다. 예산은 충분한 볕이 들고 낮밤 일교차가 사과 농사를 짓기에 적당하다. 그래서 예산 사과는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아 맛과 향이 좋기로 유명하다. 5월에는 하얀 사과꽃이 펴, 늦은 봄맞이 여행을 떠나기에 좋다. 추사고택에 다다르자 카메라를 든 사람 몇몇이 보였다. 모두 봄꽃을 사진으로 담으러 온 이들이다.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으로 마당에는 홍매화와 하얀 매화, 목련과 자목련이 담장을 따라 줄지어 피어 있다. 본래 53칸짜리 넓은 한옥이었으나 지금은 반절 정도 남았는데, 사랑채와 안채, 추사영실로 공간이 나뉜다. 대문채와 추사영실은 1977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지만 화려하지 않았던 당대 반가의 운치와 오랜 시간 피고 졌을 꽃나무가 세월을 느끼게 했다. 사랑채와 안채를 지나 추사영실로 향하는데 빳빳한 초록 잎을 지닌 수선화 무리가 보였다. 노랗고 하얗게 피어난 꽃은 햇볕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추사는 그 시대 양반들이 좋아했던 매화보다 수선화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문인이자 학자, 예술가로 누구보다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는 말년에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본 수선화 군락에서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자라는 생명력을 보았다. 고귀하다 일컬어지는 것보다 흔하지만 스스로 꼿꼿하게 자라난 들꽃에서 아름다움을 찾은 것이다. 수선화밭 옆에서 한참을 앉아 햇볕을 쬐었다.

 

 

예산성당

서양의 건축양식을 따른 예산성당.

 

예산

수선화가 무리를 이룬 길을 지나면 추사 김정희의 초상이 있는 추사영실이 나온다.

 

추사고택에서 나와 예당저수지로 가는 길에 예산시장의 국숫집 골목을 찾았다. 자연 바람으로 건조시킨 중면을 만드는 국숫집에서 국수 한 꾸러미를 사들었다. 대부분의 집이 대를 이어 국수를 만드는데, 쫄깃한 식감과 적당히 짭조름한 맛에 그냥 삶아서만 먹어도 맛있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라 한적한 시장 골목을 휘적휘적 걷는데 예쁜 패키지에 담긴 참기름을 파는 ‘봄봄방앗간’이 눈에 띄었다. 카페인지 방앗간인지 모를 깔끔한 내부를 창으로 유심히 바라보는데, 푸근한 인상의 주인장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과거에는 이 일대가 예산의 명동거리였어요. 지금은 사람이 빠져나가 군청에선 ‘그때 그 시절 추억의 골목’, ‘추사 거리’ 같은 테마 골목을 만들었죠.” 그는 예산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이 도시에 대한 애정으로 골목길을 찾아온 이들에게 예산 원도심 소개를 취미 삼아 들려준다. 그의 추천을 따라 1913년에 국내에 처음 만들어진 지방은행인 호서은행 건물과 1934년에 세워진 예산성당을 찾았다. 예산성당은 일제강점기의 근대 건축양식을 혼재하지 않고 오롯이 서양의 건축양식을 살려 지어 단정한 멋을 지녔다.

 

 

<2019년 5월호>


에디터 권아름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예산군청 www.yesan.go.kr/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