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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ATIONS - 아시아
문명의 교역로, 가지안테프

오래된 상인들의 도시엔 역사와 문화의 유산이 흘러넘친다. 풍요의 땅 가지안테프를 제대로 여행하기 위한 4가지 키워드.

 

가지안테프
가지안테프

고대에서 온 모자이크
아디야만 남서쪽, 시리아와의 접경에 자리한 가지안테프는 터키 남동부의 최대 도시다. 빼곡한 빌딩 숲이며 차와 사람으로 혼잡한 거리가 아디야만에 비해 한결 현대적인 풍광을 자아내는데, 공장도 많고 시장도 크고 무엇보다 터키 양탄자의 85퍼센트를 생산할 정도로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해 있다. 다만, 아나톨리아 남동부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가지안테프 역시 고대의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땅이다. 동북쪽 아디야만이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혼합한 콤마게네 왕국의 거점이었다면, 이곳에는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고대도시 제우그마Zeugma가 있었다. 당시 셀레우코스 장군을 따라 정착한 그리스인의 문명이 제우그마에 깊이 뿌리내렸고, 기원전 60년대 로마 제국에 편입된 이후부터는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양의 상업적 거점지로 크게 번영했다. 이때 유독 발달한 것이 바로 모자이크다. 당시 도시의 중상류층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저택을 모자이크로 치장했다. 이 대대적인 유행은 꽤 오래 지속됐고 기술도 점점 더 발전해 모자이크 장인을 양성하는 교육 시설이 따로 갖춰질 정도였다. 당대 제우그마 장인들의 놀라운 솜씨는 오늘날 제우그마 모자이크 뮤지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댐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비교적 최근에서야 발굴되기 시작한 고대도시의 유물들을 전시관에 그대로 옮겨놓았는데, 2011년 오픈과 동시에 세계 최대의 모자이크 박물관으로 등극했을 만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오리지널 기둥과 벽, 분수, 조각품들로 당대 도시의 모습을 재구성한 내부에는 회화 작품처럼 정교하게 이어 붙인 모자이크 조각들의 점묘화가 즐비하다. 그중 제우그마 모자이크의 백미로 꼽히는 것이 <집시 소녀Gypsy Girl>. 워낙 손바닥만 한 크기에다 인중 아래로는 조각이 유실되어 불완전한 형태지만, 그 눈빛이 건네는 강렬한 인상, 묘한 분위기만큼은 단연 시선을 끈다. 실제로는 그리스신화 속 디오니소스의 추종자였던 마이나드를 묘사한 작품이다.
LOCATION Mithatpaa Mahallesi, HacıSani Konukolu Bulvarı27500, ehitkamil / Gaziantep

 

 

가지안테프

성벽 아래 구시가 여행
도시 한가운데 멈춰 있는 또 하나의 시간은 터키 독립전쟁이 벌어졌던 1920년대 전후다. 실제 가지안테프는 당시의 가장 뜨거웠던 격전지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1920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거의 1년 가까운 혹독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과 아르메니아 반란군으로부터 도시를 지켜낸 것. 본래 안테프였던 지명 앞에 ‘가지(‘신앙의 수호자’란 뜻이다)’란 칭호가 붙은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구시가 한복판의 가지안테프성에는 분전했던 민병대를 기린 흔적이 파노라마 박물관 형태로 조성돼 있다. 프랑스군과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학살당한 12인의 순교자를 비롯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여러 터키 영웅의 조형물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실 여행자 입장에선 가지안테프성 자체를 둘러보는 과정도 무척 흥미롭다. 고대 히타이트 제국 시절 처음 건설된 이 성은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를 거치며 수차례 확장 및 개조되어 오늘날의 탑과 요새 형태를 이뤘다. 워낙 세월의 풍파가 모질어 내부 시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풍광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자가 성을 오르는 이유는 충분할 터. 성벽 꼭대기의 하늘거리는 들꽃 사이를 거닐다 보면 구도시와 신도시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만약 여정에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다음 목적지로는 가지안테프성 주변을 거미줄처럼 감싼 구시가의 좁은 골목들이 좋겠다. 빛바랜 돌담 사이의 미로 같은 골목길, 옛 시대의 고색창연한 흔적 위로 쾌활하고 친절한 현지인의 삶을 만나는 시간. 가지안테프의 구시가는 대규모의 재래시장과도 붙어 있어, 다채로운 풍광을 쉴 새 없이 마주할 수 있다. 특히 동굴 형태의 옛 구조를 유지한 몇몇 건물이 카페나 상점으로 개조돼 성업 중인데, 그중 ‘칼레오을루 마아라시Kaleolu Maarası’만큼은 잠시나마 짬을 내어 들러볼 것을 권한다. 과거 프랑스군 점령 기간 동안 음식과 탄약 저장고로 쓰인 이 동굴은 오늘날 가지안테프 여행자를 위한 가장 이색적인 쉼터다.

 

 

가지안테프

터키 미식의 본고장
매년 유네스코가 진행하는 ‘창의도시 네트워크’란 프로그램이 있다. 문학, 음악, 민속공예, 디자인, 영화, 미디어, 음식 등 7개 분야에 걸쳐 높은 창의성으로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한 세계의 도시를 선정하는 행사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총 26개 도시만이 리스트의 음식 부문에 이름을 올렸는데(한국에서는 전주가 속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지안테프다. 실제로 이곳은 터키에서도 손꼽는 미식의 본고장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가지안테프의 미식 역사는 철기시대부터 이어온 일대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 수십 종류의 케밥과 터키의 대표 디저트인 바클라바baklava(겹겹이 쌓은 필로 도우에 견과류를 넣은 페이스트리)가 이 지역에서 탄생했으며, 지금도 인구의 60퍼센트가량이 음식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있단다. 가지, 피스타치오 등 도시가 자랑하는 특산물의 명성도 세계적으로 대단하다. 우선 가지안테프 미식의 가장 큰 특징은 요리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고(약 400가지에 달한다) 조리법이 상세히 분류돼 있다는 것. 다른 지역에 비해 간이 세고 매운맛이 강하며 여러 향신료의 쓰임이 매우 체계적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만약 맛있는 한 끼 식사뿐 아니라 가지안테프의 요리 문화를 좀 더 깊이 있게 체험하고 싶다면 도심부의 식물원 가까이에 위치한 ‘무트파크 사나틀라리 메르케지Mutfak SanatlarıMerkezi’를 추천한다.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서 도시의 미식 문화를 현지인과 여행객에게 소개하기 위해 설립된 일종의 레스토랑 겸 요리 문화센터다. 철마다 가장 질 좋은 현지 식재료를 활용해 그때그때 창의적인 전통 요리를 선보이는 한편, 도시의 여러 특산물과 향신료, 곡류, 가공식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도 함께 마련해두었다(현지인이 추천하는 최상급 피스타치오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가지안테프 여행자라면 다양한 종류의 미트볼과 고소하고 촉촉한 가지 케밥, 그리고 피스타치오를 듬뿍 올린 바클라바는 반드시 맛보고 돌아갈 것.
LOCATION Gazi Mahallesi, Zübeyde Hanım Blv. No:39. 27400, ehitkamil / Gaziantep

 

 

가지안테프

올드 바자르 투어
가지안테프 여행의 백미는 시장 구경이다. 일찍이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번성했던 이곳은 미식 못지않게 발달한 수공예 산업 덕분에 솜씨 좋은 장인들의 도시로도 명성을 얻은 지 오래다. 실제로 구시가 중심부의 크고 작은 골목이 지금도 시장으로 가득 차 있다. 동기와 자개, 전통 옷감, 가죽 신발, 레이스 등 온갖 공예품이 구석구석 즐비한데, 꼭 구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구경 삼아 걷다 보면 반나절쯤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올드 바자르 투어는 보통 가지안테프성 맞은편의 상점가 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상점이든 외관은 초라해 보일지언정 안으로 들어서면 보물 창고가 따로 없다. 자개장과 예메니(터키의 전통 가죽신), 체즈베(터키식 커피 주전자) 등 다양한 전통 공예품이 벽면을 가득 채운 한편, 구석진 자리에서 현란한 예술 세계를 뽐내는 장인들 역시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최대한 물욕을 자제하며 상점가 거리를 통과하면, 지붕 덮인 상가 건물인 진지를리 베데스텐Zincirli Bedesten 너머 본격적인 바자르의 영역이 펼쳐진다. 이를테면 망치질 소리가 청아하게 울리는 골목은 구리 공예 장인들의 시장Bakırcılar Çarısı. 터키 전역의 기념품 상점에서 판매되는 각종 구리 세공 제품이 거의 이곳에서 만들어질 만큼 대규모란다. 가장 자주 눈에 띈 것은 체즈베였는데, 크기와 형태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쇼핑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정신을 다잡기 힘들 정도. 곶감처럼 천장부터 늘어뜨린 색색의 예메니, 화려한 문양을 뽐내는 전통 옷감이며 도자기 사이를 지나쳐 간신히 공예품 골목을 빠져나가면, 이번엔 피스타치오와 올리브, 향신료를 중심으로 한 식재료 골목이 개미지옥처럼 발길을 붙잡는다. 친절한 현지 상인들 덕분에 하나하나 맛보며 구경하기 좋지만, 일단 말을 섞은 뒤엔 이들의 현란한 장사 솜씨를 방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무게나 가격에 큰 부담 없이 쇼핑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개인적인 추천 기념품은 체즈베와 예메니(피스타치오는 이미 구매했다는 전제하에). 8월쯤 방문한다면 생피스타치오가 이 목록에 추가된다.

 

 

<2019년 5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