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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STIC - DOMESTIC TRAVEL
양산, 곳곳에 숨은 다정한 풍경들

봄날의 기억, 양산 봄꽃 여행②

 

경남 양산

통도문화예술거리에 있는 광장. 각종 공연이 이곳에서 열린다.

 

경남 양산

산평 5일장에 나른한 오전이 찾아왔다.

 

사찰 바로 앞에는 통도문화예술거리가 있다. 음식점과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인데, 플리마켓이나 작은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주민들이 삼삼오오 구경을 나온다. 행사가 없는 평일 아침에 이곳이 북적일 일은 없다. 통도아트센터를 지나자 어디선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신평시장에 3일과 8일에 열린다는 5일장 때문이다. “어디서 오셨는지, 암만 봐도 여기 사람은 아닌데. 한번 보고나 가시오.” 주인은 골동품 앞을 기웃대는 객을 단번에 알아본다. 카세트테이프, 귀퉁이가 닳은 책, 구식 휴대전화 등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흔한 말이 무색하지 않게 각종 잡동사니가 길 한편에 빼곡하다. 낡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눈에 대던 주인은 서울에서 사업 실패 후 양산에 내려왔다 했는데, 얼굴에는 근심 하나 없다. 어디서부터 둘러봐야 하는지 물으니 오른팔을 작게 휘저으며 말했다. “시장이 다 똑같지 뭐. 여긴 5분이면 충분해.” 골동품 가게를 지나 노천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제철 과일, 형형색색의 재킷 등 당장 살 만한 것은 없어 보여도 구경 거리는 많다. 채소를 다듬는 상인의 손은 부지런하다. 나란히 앉은 아주머니와 수다하게 주고받는 말의 속도는 더 빠르다. 옆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네 이야기를 같이 들으며 바삭한 시장표 호떡을 베어 물었다.


시장 구경에 재미가 들려 양산남부시장도 가보기로 했다. 구매 의욕 없는 사람을 향한 호객을 좋아하진 않지만, 왠지 시장의 그것은 싫지 않고 오히려 귀에 쏙쏙 박힌다. ‘정’이라는 단어가 시장에는 여전히 살아 있다. 양산남부시장은 전통시장의 익숙한 풍경에 청년들의 열정이 더해진 곳이다. 미로 같은 2층 상점가를 지나다 보면 요즘 젊은 층이 좋아할 아기자기한 상점 20여 곳이 모인 공간이 등장한다. 청년 상인들을 위한 청년몰인 ‘흥청망청’이다. “문 연 지는 8개월쯤 된 거 같아요. 아쉽게도 아직 홍보가 덜 돼 그리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지만요.” 흥청망청에서 제일 유명한 디저트 숍 사장의 말이다. 찾는 이가 많지 않다고 했지만, ‘CLOSE’를 걸어둔 가게 앞에서 아쉬운 표정을 짓는 20대 손님을 몇 분 사이에 두 팀이나 봤다. 문이 연 틈을 타 재빨리 마카롱 2개를 기념품 삼아 구매했다.

 

 

경남 양산

태평양분식의 푸짐한 칼국수 한 그릇.

 

경남 양산

양산남부시장은 양산의 최대 전통시장이다.

 

경남 양산

법기수원지의 댐 마루로 가는 계단. 이곳을 오르면 7그루의 반송과 호수 풍경이 기다린다.

 

점심은 시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메뉴는 양산 사람이라면 한 번쯤 먹어 봤다는 태평양분식의 시장 칼국수다. 칼국수는 한 그릇에 3천5백원. 콩나물을 간장에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은 4천원. 입구에서 팔팔 끓이던 선지 국밥 4천원. 칼국수 한 젓가락에 깍두기 한 입, 된장 푹 찍은 오이고추 한 입을 맛본다. 푸짐한 양, 저렴한 가격과 동떨어져 생각해봐도 만족스러운 맛이다. 아까 산 오레오 크림 마카롱으로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해결한 시장에서의 한 끼 식사. 배도 불렸으니 다시 여행길에 나서야 할 때다.


다음 목적지는 법기수원지다. 문화해설사에게 봄에 갈 만한 곳을 권해달라 했을 때, 내원사, 배내골, 홍룡폭포 등 양산8경에 속하는 곳들을 뒤로하고 추천받은 장소다. 1927년 일제강점기에 착공을 시작해 1932년에 완공됐는데, 이후 상수원 보호를 위해 한 번도 개방되지 않다가 79년 만인 2011년에 수원지의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법기수원지에 들어서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길 좌우로 펼쳐진 편백나무, 히말라얀 시더 나무가 위용을 과시한다. 높이가 약 30미터에서 40미터에 이르는 나무들이 수원지로 가는 일직선 길을 빼곡히 채운다. 분위기는 남이섬의 메타세쿼이아 길과 흡사하다. 계단을 올라가면 댐 마루 안쪽으로 물이 찰랑댄다. 현재도 7000여 가구의 식수로 쓰일 만큼 맑고 청정하다. 댐 마루를 산책하는 일도 즐겁다. 총 7그루의 법기 반송이 길 중간중간에 서 있어 걷는 내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칠형제 반송’이라 불리는 7그루 모두 수령이 130년을 넘는다. 노령의 반송과 호수가 만들어낸 호젓한 풍경을 보며 문화해설사의 추천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19년 4월호>


에디터 김수현
포토그래퍼 전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