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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STIC - DOMESTIC TRAVEL
통도사, 고즈넉한 절간에 찾아온 봄

봄날의 기억, 양산 봄꽃 여행①

 

양산 통도사

봄꽃이 활짝 핀 통도사를 외국인 관광객들이 산책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

구룡지는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얽힌 연못이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울산역을 도착지로 삼은 건 역에서 30분 거리인 통도사를 양산의 첫 번째 여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통도사가 자리한 하북면은 양산의 북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양산이기도 하다. 통도사는 양산의 8경 중 제1경. 한마디로 양산을 대표하는 명소다. 사실 통도사에 간 이유의 8할은 자장매라 불리는 수령 370년의 홍매화 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통도사에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아이쿠, 이를 어째. 홍매화는 이미 거의 져버렸는데.” 자장매의 위치를 묻는 내게 문화해설사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지금은 다 졌지. 그래도 먼 곳에서 온 것 같은데 천천히 걷다 가셔요.” 매화는 봄의 전령이라더니, 홍매화가 봄을 재촉한 건 이미 한 달 전부터였나 보다. 나무는 이제 여름을 기다리는 중. 꽃망울을 다 틔운 뒤 가지만 남았지만,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꽃이 없다 하여 이곳을 그냥 지나칠 생각은 없었으므로. 무엇보다 사찰로 들어가는 길, 무풍한송로에 늘어선 노송나무를 보며 좀 더 오래 머물러야겠다 진즉에 마음먹었다. 멋쩍은 손이 관광안내소의 문을 다시 두드린다. 방금 매화나무의 위치를 일러준 문화해설사가 기다렸다는 듯 경내 산책에 앞장섰다.

 

 

양산 통도사

목조로 만들어진 대웅전. 서쪽에는 ‘대광방전’이라 적힌 편액이 걸려있다.

 

선덕여왕 15년,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던 자장율사는 낙동강과 동해를 낀 영축산 남쪽 기슭에 통도사를 세웠다. 통도사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로 불린다.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 그리고 경책을 모셔와 금강계단에 봉안했기 때문이에요. 통도사의 상징인 금강계단은 자장과 선덕여왕이 축조한 이래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이뤄진 절 안에는 현재 40여 개의 전각이 있다. 어서 금강계단으로 가고 싶었지만, 일주문을 통과한 이후 문화해설사의 발은 좀처럼 나아가질 않는다. 느린 걸음에 동조하며 눈에 보이는 전각을 빼놓지 않고 다 둘러보았다. 걷는 동안 법당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 불경 소리가 마음을 너그럽게 만든다. 극락보전, 관음전, 봉발탑을 지나 어느새 상로전에 다다랐다. 막상 이곳에 오니 금강계단보다 대웅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때 불타 1645년에 중건했는데, 금강계단에 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내부에는 불상 대신 화려한 불단이 자리한다. 오늘 금강계단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문을 굳게 닫은 상태. 하는 수 없이 까치발을 들어 담장 너머를 바라본다. 한눈에 봐도 경내에서 가장 근엄한 분위기를 뽐내는 공간이다. 문화해설사를 쫓아온 여행자들도 하나둘 담장 위로 솟은 사리탑을 응시한다.

 

 

양산 통도사

경내에는 불경을 외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양산 통도사

통도사에는 매화뿐만 아니라 산수유도 활짝 폈다.

 

아직 첫 코스인데, 통도사에서만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양산의 다른 곳도 구경해야 해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다음번 양산에 오면 통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생각이다. 아침 예불 종성을 들으며 잠에서 깨 맑은 음식으로 공양하고, 참선과 산책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통도사를 에워싼 암자 순례길을 걷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산문을 시작으로 무풍한송로, 통도사를 지나 곳곳에 자리한 암자를 둘러보는 코스다. 총 2코스로 각각 2시간 30분, 4시간에 걸쳐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다.


2018년 6월, 통도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됐다. 산지형 불교 사찰을 대표하는 7개 사찰이 여기에 포함된다. 불자는 아니지만 규모 있고 이름난 절을 방문한 게 처음은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소박한 절간’과는 다소 동떨어진 풍경에 이질감을 느끼고 돌아설 때가 많았다. 통도사 역시 3대 사찰답게 이른 시간부터 찾는 이들이 끊이질 않았다. 대신 그간 본 절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노령의 나무, 오래된 전각, 빛 바랜 벽화 등 이곳에 자리한 모든 것이 예스럽고 다정했다.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이 아닌 고즈넉한 절간 풍경에 마음이 동했다.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했고, 합장한 손끝에서는 경건함이 느껴졌다. 중로전 영각 앞, 그토록 보고 싶던 자장매의 홍매화는 이미 졌지만 미풍이 불 때마다 경내에는 매화와 산수유 꽃잎이 휘날렸다. 천년 고찰에서 맞이한 아름다운 봄날 아침이었다.

 

 

<2019년 4월호>


에디터 김수현
포토그래퍼 전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