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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ESTIC - DOMESTIC TRAVEL
서핑 처음이세요? 태안 만리포해변으로!
서해 유일한 서핑 스폿 만리포해변에서 롱보드를 들고 노란 튜브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만리포해변
만리포해변
만리포해변
만리포해변
만리포해변
만리포일 줄이야. 솔직한 심정을 적어본다. 나의 생애 첫 서핑지는 공식적으로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의 만리포해변으로 기록될 것이다. 변치 않을 사실이라 생각하니 문득 슬퍼졌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하와이, 발리, 골드코스트,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와 말리부를 눈여겨보며 당연히 해외에서 첫 서핑을 하게 될 것이라(혹은 하고 말리라)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서핑은 어디 에서 배우셨어요?” 누가 물어보면 혀를 돌돌 말아 외국 ‘비치’ 이름을 대야겠다고 별렀었는데, 이젠 물 건너간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제주도도, 부산도, 양양도 아닌 만리포라니. 정말 서해에서 서핑이 가능하긴 한가? 최근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서핑 스폿으로 만리포가 급부상하는 중이고, ‘포’자로 끝나는 행운도 거머쥐어 겸사겸사 캘리포니아에 빗대어 ‘만리포니아’라고 불린다는 사실까지 알면서도 미심쩍었다. 2시간 30분 만에 바다에 닿지 않았더라면 핸들을 돌려 서울로 복귀했을지 모르겠다. 만리포는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데려갔던 바다다. 땡땡이 원피스 수영복 입고, 고무 튜브 타고, 핫도그에 케첩 발라 바닷물에 적셔 먹던 추억이 가득한 곳. 서해의 유일한 서핑 스폿이라는 만리포해수욕장, 거기서도 하나밖에 없는 서핑 숍인 엠엘피 서프의 입문자 수업에 등록한 날도 아버지와 마주 앉아 지난 날을 곱씹으며 웃었다. “맞아. 만리포가 옛날부터 서핑으로 아주 유명했어. 왜 눈을 동그랗게 떠? 내 말은 보드가 아니라 튜브 타고 서핑을 했다는 얘기지. 슬쩍 밀어냈다가 다시 확 당겼다가, 거기가 파도 박자 타는 맛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 농담처럼 흘려들었던 아버지의 말을 지난 몇 년 사이 ‘서핑 천국’으로 불리게 된 만리포해변에서 직접 보드 위에 올라탄 후에 격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어라, 제법 서핑 느낌이 나는데? “어푸어푸….” 물이 기껏해야 허리춤에 오는 잔잔한 서해 바다에서 혼자 영화를 찍었다. 뒤에서 밀려드는 파도를 적당한 타이밍에 잡아채려면 보드에 납작 엎드려 양팔로 헤엄치기를 해야 하는데, 매번 서지도 못하고 얼굴이 물에 처박혔다. 망설이는 찰나 보드는 발라당 뒤집히고 만다. 더 창피한 건 곧 죽을 것처럼 호흡 곤란이 와서 일어나면 물 높이가 겨우 발목. 부력 좋고 균형 잡기 좋은 3미터 남짓한 스펀지 보드면 무엇하나. 과연 첫판에 설 수 있을까? 입문자의 임무란 일단 '서는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국내 그 어떤 곳보다 초보자를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바다가 만리포다.

지형적으로 북서쪽을 보고 있어서 주변과 비교해 양질의 파도가 들어오는 한편 파도의 힘이 강하지 않고 느리다. 서퍼식으로 얘기하면 탈 만한 파도도 종종 친다. 얕은 수심, 완만하고 부드러운 모랫바닥, 해안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깨지는 파도의 조건. 수영 못해도 빠져 죽을 일 없고 거친 파도에 겁먹을 일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영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그래도 한번 일으켜 세워보겠다고 긴박하게 고함치는 강사의 목청이 염려됐다. 오른쪽 다리를 살짝 접어 일어설 자리에 미리 당겨놓는 편법도 사사했지만, 뒤통수에서 파도처럼 부서져 사라지던 서핑 전문 용어들. 그러기를 40분 남짓 어깻죽지에 담이 들 지경에 이를때쯤 거짓말처럼 낚아챈 테이크오프 후에 몇 초를 버텨냈고, 파도를 끝까지 따라가 미끄러지듯 모래밭에 사뿐히 안착했다. 몇 번이나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정말 단 한 번. 이건 분명 만리포가 서핑 입문자의 첫날에만 선물하는 기적이리라. 비루한 몸뚱이에 자책하지 않고, 두번째 서핑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바다. 흥이 올라 와이키키에서 멋지게 파도 타는 미래도 어렴풋이 그려봤다. 그때 누가 물어본다면 ‘포for’ 발음을 실컷 굴려 대답하려 한다. 첫 서핑은 만리포니아에서였다고, 처음치고 완벽한 라이딩이었다고 말이다.


<2017년 9월호>

에디터 강은주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낭만서프하우스 061-835-3625